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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창조도시

영국 버밍엄 운하

[창조역량] 쇠퇴해가던 역사 유산서 도심 생명줄로 부활하다
지역의 창조역량을 키우자 <8>영국 버밍엄운하

산업혁명시대 번영…철도 등장으로 경쟁력 상실
1970년대 이후 주변개발·문화관광자원 활용 주목


입력날짜 : 2011. 07.21. 00:00

산업혁명 이후 200여년간 버밍엄의 생명줄이었던 버밍엄 운하 전경. 제조업 공장의 석탄연료 사용이 중지되면서 버밍엄운하 네트워크 중 약 60마일(97㎞)이 공식 폐쇄되고 현재는 100마일(161㎞)만 남아있다.
버밍엄은 이탈리아 베니스에 비유될 만큼 운하가 발달한 도시로 유명하다. 버밍엄을 소개하는 여러 안내책자들은 베니스보다도 많은 운하를 지닌 곳으로 리버풀에서 런던, 세번 강에서 트렌트 강으로 이어지는 잉글랜드 내륙물길 네트워크의 허브로 설명하고 있다. 버밍엄운하는 17-18세기 산업혁명시대 석탄과 철의 운송루트로 개발돼 번영을 구가하다가 1830년대 이후 철도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오늘날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버밍엄 운하가 결정적으로 쇠퇴를 맞은 것은 1956년 제정된 대기오염 방지법(Clean Air Act) 때문이다. 당시 공장들은 수송의 편리성을 위해 운하제방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석탄을 사용하던 공장들을 석유연료로 사용하는 쪽으로 전환하면서 운하의 중요한 이점이 사라진 것이다.
1950년대에 버밍엄운하 네트워크 중 약 60마일(97㎞)이 공식 폐쇄되고 100마일(161㎞)만 남아있다.
버밍엄시 당국은 1970년대까지 달동네처럼 버려진 도심운하 주변을 대대적으로 개발해 지금은 가장 활기차고 매력적인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취재팀은 운하가 흐르는 브린들리지구(Brindley place)를 찾았다. 브린들리(Brindley)는 초기 운하 개발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도로와 연결된 계단을 따라 둔치로 내려가니 운하가 어우러진 이색적인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도심과 바로 인접한 곳에 운하가 흐른다는 사실만으로도 버밍엄은 낭만적인 도시로 느껴졌다.
운하를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운하주변에는 노천카페와 맥주집(Pub),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둔치 보도를 따라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북적거리지 않고 한가롭다. 간혹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유람선이 활기를 불어넣는다.
1827년에 만들어진 철제다리가 아직도 남아있어 산업혁명 시대 당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뿐 아니라 벽돌로 지어진 교각에는 배들이 다니며 스쳐간 자국들이 선명히 남아 있어 그 당시 석탄과 철을 실어나르던 모습이 떠올려진다.
산업혁명시대를 전후해 200년간 버밍엄의 생명줄 역할을 했던 운하는 곳곳에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스토리텔링의 훌륭한 소재가 되고 있다. 곳곳에 안내판이 설치돼 예전의 추억을 환기시킨다.
가장 먼저 만나는 과거의 발자취는 브로드 스트리트 터널(Broad Street Tunnel). 터널을 지나는 보도는 가스 스트리트로 연결돼 활기넘치는 역사속 운하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가스 스트리트(Gas street)에 이르면 이름 그대로 가게와 가로등마다 가스등을 매달고 있다. 전기가 없던 시절 운하를 밝히던 가스등불은 뿌연 안개와 더불어 한 폭의 유화처럼 무겁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을 것으로 상상된다.
가스스트리트는 Worcester, Birmingham, Birmingham Main Line 등 3개의 운하가 만나는 점접지역이다. 이러한 지리적 입지 때문에 이곳에는 운하회사의 요금징수 사무소(toll offices)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배들은 화물종류와 중량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고 통과했다. 그 건물에는 지금은 카페와 가게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 오른편에는 옥수수 창고와 주택같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운하주변의 역사적 건물 가운데 가장 랜드마크는 메일 박스(Mail Box)이다.
Mail Box는 이름 그대로 우편물을 수집분류하는 우편집중국으로 수로와 수로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그 자리에 현대식 복합쇼핑물이 들어서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Mail Box에는 BBC 버밍엄방송국을 비롯 호텔, 레스토랑, 패션상가, 디자인 사무실 등이 한데 자리하고 있어 운하를 배경으로 세련된 도시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밖에도 운하에는 1827년에 만들어진 철제다리가 아직 남아있고 벽돌로 지어진 교각에는 배들이 지나다니며 스쳐간 자국들이 선명해 그 당시 석탄과 철을 실어나르던 모습이 떠올려진다.
운하 입구에 세워진 안내표지판에는 ‘운하가 다시 살아났다. 주변을 둘러 보아라’라고 쓰인 글씨와 함께 개발 전·후의 모습이 사진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운하가 시민과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해온 탓인지 수로 주변 벤치에는 노인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직접 유람선을 타고 운하를 가까이서 느껴보기로 했다. 수로를 따라 왕복 1시간정도 운행하는데 1인당 6파운드(약 1만원)를 받는다. 유람선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운하에는 청둥오리와 같은 물새들이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빵부스러기를 먹으며 한가롭게 노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속도경쟁을 하는 현대적 도시거리와는 달리 이곳은 예전 산업혁명시대의 보폭으로 시간이 유유히 흐르며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잠시 평화를 맛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운하를 껴안고 있는 브린들리 지구는 어떨까. 브린들리 지구는 운하의 후광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것은 운하의 물줄기가 이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브린들리 지구는 운하를 좌우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해 활기가 넘친다.
유명한 국립해양생태관(Sea Life Centre)를 비롯 현대미술갤러리, 극장, 레스토랑, 카페 등 매력적인 장소가 밀집해 있다. 또한 인근에는 ICC(컨벤션센터), NIA전시장, 음악거리 등 사람을 끌어모으는 흡입력있는 공간이 포진해 있다.
버밍엄운하는 한마디로 버밍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영원한 시간의 물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쇠락해가는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창조적인 도시개발정책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시대의 산물인 운하가 시대변화에 맞춰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이러한 감춰진 자원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여운으로 남았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소중한 역사문화자원을 아무런 인식없이 허물고 파괴해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렵다. 이제라도 남아 있는 자원을 잘 보존하고 가꿔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영국 버밍엄=박준수기자 jspark@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