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역량] 20세기 빵 굽던 공장이 21세기 예술 창작의 산실로
지역의 창조역량을 키우자 <9>영국 버밍엄 커스터드 팩토리
500개 스튜디오에 젊은 예술가·창조기업 입주
역동적인 커뮤니티 형성…도심공동화 해법될듯
입력날짜 : 2011. 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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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80년대 이후 커스터드 팩토리는 폐쇄된 채 방치돼 흉물로 남게 됐다. 주변 공장들 역시 제조업의 쇠퇴로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해 이 일대는 완전히 무인지대로 전락했다.
이후 10여년이 흐른 1990년 부동산개발업자인 베니 그레이(Bennie Gray)씨가 커스터드 팩토리를 싼값에 사들여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실시했다.
그는 커스터드 팩토리를 젊은이들이 창조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당시 영국은 오늘날 한국과 마찬가지로 높은 청년실업률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또한 도심은 비싼 임대료로 인해 창조적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마음껏 예술활동을 펼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그레이씨는 이 건물에 500개의 스튜디오(원룸형태의 작업실)를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임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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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빈 공장들로 가득 찼던 이곳이 젊은이들의 에너지와 열정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20세기 빵을 만들어 배고픔을 해결해줬던 이곳이 21세기 들어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창작의 산실로 탈바꿈한 사실이 극적이면서 흥미롭다.
취재차 찾아간 커스터드 팩토리는 건물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건물벽에는 요란한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고, 주변 건물 역시 독특한 조각장식들이 부착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건물 내부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복도 천장에는 현대적 조각조형물이 걸려있어 이곳이 창작공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때마침 건물 1층에 입주해 있는 노키아가 새로 개발한 휴대폰 출시 발표회를 갖고 있었다. 휴대폰과 예술과는 얼핏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젊은이들의 소통 수단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이 젊은이들이 밀집해 있어 빠르게 타겟시장에 침투할 수 있는 경로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모두 500여명의 예술가와 소규모 창조기업들이 입주해 역동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각 스튜디오에는 갤러리, 패션숍, 고미술품가게, 춤연습장, 화실, 음악창작실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방이 차지하고 있으며, 카페와 레스토랑, 바(Bar)와 나이트클럽, 헤어숍 등 각종 편의시설이 하나의 매력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젊은 예술가들의 상당수는 이전에 실업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창작활동을 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 패션디자이너는 “예전에 있던 사무실은 춥고 외로웠으나 이곳은 흥미진진하고 모든 것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어 편리할 뿐 아니라 정보와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작품발표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커스터드 팩토리는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영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창조도시의 상징으로 소개되고 있다.
구 도심의 쇠퇴지역이 한 사업가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현장을 취재하면서, 구 도청을 중심으로 한 도심공동화 문제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가 깊이 고민해볼만한 대목이다.
도심 기능의 쇠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심에 문화 활동을 도입하고, 리처드 플로리다가 주장하는 것처럼 창조적 계급을 지렛대로 삼아 국가나 지역경제의 경쟁력을 제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재고(再考)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산업전반으로 문화혁명 확산”
인터뷰 / 데이브 피블스 커스터드 팩토리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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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은 커스타드 팩토리 매니저인 데이브 피블스(Dave Peebles)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한국에 커스터드 팩토리가 창조기업의 대표적 성공모델로 소개되고 있다고 하자 “실제보다 PR이 과장됐다”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는 “하나의 소기업이자 극히 전통적인 비즈니스모델에 불과하다”며 “22년 당시 건물가격이 아주 저렴했고, 런던과 버밍엄의 가교역할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개관 초기에 무료로 공간을 제공하자 예술가들이 관심을 갖고 몰려들기 시작해 120명의 예술가들이 입주했으나 겨울에는 추워서 불만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현재는 500개의 공간에 화가, 그래픽 디자이너, 웹 디자이너, TV회사, Nokia, 쇼핑센터, 은행, 창조기업 등 다양한 업종이 입주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경제적이지 못하다”며 “당장 돈벌이보다 장기적 비전을 갖고 명성을 추구한다”고 커스터드 팩토리의 운영방침을 소개했다.
그는 “전통기업들이 예술을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며 문화혁명(culture revolution)이 산업전반에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조업의 경우 한 개의 기업만 살아남고 수많은 기업이 쓰러지지만 창조기업은 선형적 과정을 필요로 하는데 즉, 영화산업을 보면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음향, 뮤직 등 수많은 협력자가 필요하다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특히 이곳에서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완성해가는 장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2가지 위기요인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첫째는 열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런던의 팽창으로 버밍엄의 자원이 빨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이 런던으로 집중하고 그곳에서 쇼핑하고 먹고 소비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런던은 25-30년 전에 비해 엄청나게 커져 세계적 도시로 발전했지만 주변도시는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20년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커스터드 팩토리에 입주한 500개 기업 역시 운명을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일례로 최근 미국 디트로이트를 방문해보니 유령의 도시로 전락해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창조도시 전략은 도시의 정체성에 입각해 수립되고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준수기자 jspark@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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