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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의향유산 발굴·보존 절실

3·1운동 100주년 의향유산 발굴·보존 절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1919년 3·1운동은 광주·전남에서도 들불처럼 일어났다. 광주 3·1운동 발원지는 양림동이다. 이곳은 광주의 갑부들이 터를 잡고, 미국 선교사들이 둥지를 틀면서 수피아, 숭일학교가 개교한 지역으로 서구사상과 자주의식이 강한 곳이다. 따라서 3·1만세 운동 역시 자연스럽게 이곳에 발화되어 광주 전역으로 번져갔다.
양림동은 이러한 역사성을 기반으로 광주 근대화의 들머리가 되었다. 서구 사상의 영향으로 근대화의 각성이 개화하면서 기독교 정신이 뿌리를 내리고 문학의 새싹이 돋아났다.
그러나 양림동은 최근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거듭나고 있으나, 역사적 현장으로서 문맥은 뚜렷하게 부각되지 못했다. 그리고 광주가 ‘의향’을 자처하면서도 3·1운동에 대한 선행연구가 충분치 못하다. 선행연구의 내용들이 거의 대등소이할 뿐 아니라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등의 내용이 반복되고 있고, 재판기록과 같은 당대의 자료가 제대로 분석·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3·1운동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올해 3·1운동 100주년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새로운 논저를 내놓으면서 3·1운동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연구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3·1운동 관련 문화유산 발굴 및 보존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돼야 한다. 3·1운동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그 참여 인물이나 기관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고, 의미가 있다면 광주 3·1운동에 대한 풍부한 ‘스토리텔링’ 소재가 될 것이다.
‘의향’을 자처하는 광주에서 한말 호남의병과 3·1운동, 광주학생운동 등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만약 3·1운동이 없었다면, 그리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없었다면 광주·전남의 독립운동사는 정말로 초라했을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광주가 민족의식과 역사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의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항쟁 유산의 발굴·보존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