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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소리에 잠깨는 도시

새소리에 잠깨는 도시
박준수 논설위원


입력날짜 : 2011. 08.02. 00:00

요즘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도시의 경쟁력을 어메니티(Amenity·쾌적성)에서 찾는다. 어메니티는 사람이 어떤 사물이나 환경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끼는 감흥으로서 쾌적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개념은 도시의 편리성을 개선하고 녹지를 확충하여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갖추는 것은 물론 도시의 유·무형 문화자원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창조해나가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이는 과거 도시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제조업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고 하이테크와 서비스산업, 창조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쾌적성이 핵심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쾌적성이 뛰어난 도시는 원주민의 삶의 질을 높여 정주만족도를 충족하는 동시에 외부로부터 관광객과 투자자, 이주자를 불러들여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킨다.
대표적으로 ‘클린시티’(Clean City) 싱가포르, 핀란드 헬싱키, 독일 하노버,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이 어메니티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필자가 근래 방문한 도시 가운데 영국 버밍엄과 일본 사가시가 인상적이었다. 이 두 도시는 물이 풍부하고 새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두 요소는 한국 도시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이어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지난 6월말 버밍엄에서 맞은 첫날 아침 호텔 창너머로 들려오는 낯선 새소리에 잠을 깼다.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놀랍게도 수 십 마리의 갈매기가 도심 빌딩 위를 선회하며 내는 소리였다.
내륙에 위치한 이 곳에 어떻게 바닷새가 날아와 살고 있을까 의아했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도심을 흐르는 운하를 찾았을 때 저절로 풀렸다. 버밍엄은 베니스보다도 많은 운하를 지닌 곳으로 리버풀에서 런던, 세번 강에서 트렌트 강으로 이어지는 잉글랜드 내륙물길 네트워크의 허브이다.
아마도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배를 타고 내륙 깊숙한 버밍엄까지 왔다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사가시 역시 새와 물에 대한 추억이 한편의 삽화처럼 떠오르는 곳이다. 지난해 7월 사가시에 머물렀을 때 잠을 깨우는 건 바로 까마귀였다. 사가호텔 바로옆 수변공원 소나무에 까마귀가 서식하며 투숙객들에게 인사라도 건네듯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검은색 깃털에 큰 몸통을 가진 까마귀가 눈앞을 낮게 스쳐갈 때는 오히려 섬뜩 놀라기도 한다.
사가시는 도심에 드물게 고성이 자리하고 있어 성 주변에 조성된 호수(해자)가 여러 개의 수로와 연결돼 산책로 겸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수로 옆에 설치된 소년동상의 손을 잡았을 때 전기가 들어오면 행운을 얻는다는 스토리텔링도 흥미롭다.
그렇다면 광주시는 어떠한가. 최근 몇 년 새 푸른길공원을 비롯 도심에 녹지와 공원이 많이 조성됐으나 새와 물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한때 광주공원에 비둘기가 집단서식하며 광주를 상징하는 시조(市鳥)로까지 지정돼 있으나 지금은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시민들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
환경부가 야생성 보호차원에서 사료를 주는 행위를 금하는데다 광주공원 주변 음식점들이 철거되면서 먹이감이 사라져 서식환경이 나빠진 탓이다. 게다가 비둘기의 배설물이 건물과 시설물에 부식을 촉진하다는 이유로 작년 3월 ‘유해조류’로 분류돼 도심서식을 차단하라는 지침이 내려져 머잖아 도심에서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 언젠가 광주를 상징하는 시조(市鳥)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둘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대신 광주에는 새로운 조류들이 우리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수질개선사업으로 광주천 물이 맑아지고 습지와 녹지가 늘어나면서 왜가리, 맷비둘기, 지빠꾸리, 꾀꼬리 등 천연기념물이 관찰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도심에서 새를 발견하고 새소리를 듣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나무심기운동 등을 통해 외형적인 어메니티는 많이 개선됐으나 아직 생태계적으로 미완성 상태인 것이다. 새소리만으로도 그 도시에 대한 색다른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어메니티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아시아문화수도인 창조도시 광주의 경쟁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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