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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봄이 오는 길목

봄이 오는 길목

 

입춘(2월4일)이 지나고도 강추위가 수그러들지 않더니 오늘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아내와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금당산에 오르기로 했다.
새장같은 아파트에 갇혀 있다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오싹 파고든다.
아파트 단지는 거대한 성처럼 그늘이 짙게 드리워 겨우내 냉기가 흐른다.
산 초입에 닿으니 봄볕이 살갑게 느껴진다. 바람도 잠잠하다.
솔향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도심속 산은 묘한 마력을 지녔다. 산과 도시의 경계가 불과 한걸음 차이지만 산속에 들어오는 순간 산신령이나 된 듯 속세의 잡념이 사라지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취하게 된다.
산은 생명의 광장이다. 나무 한 그루, 돌 하나라도 도시에서 만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느낌이 다르다. 아파트의 조경수들은 아무런 느낌없이 그냥 지나치지만 산속에서 만나는 나무는 뭔가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아파트 주차장에 돌맹이가 굴러다닌다면 눈에 거슬려 집어서 치워놓지만 산속의 돌맹이는 거부감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심지어 텃밭 울타리 돌마저 고향집 돌담처럼 정겹다.
그리고 산에는 느림의 미학이 숨쉬고 있다. 도시의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 보이지 않는 속도경쟁, 돈을 좇아 뛰는 사람들, ꡐ빨리 빨리ꡑ 허기진 욕망을 채우느라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산은 그런 아귀다툼이 없어 평화롭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까지도 맑아진다.
잠시나마 그런 자연의 품에 안겨 위안을 얻으려 사람들은 산에 오른다.
아들에게 산에 온 느낌을 시로 표현해보라고 했더니 아들은 이렇게 즉흥시를 짓는다.ꡒ산에는 향기가 굴러다닌다/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아름다운 풍경이 머물러 있다ꡓ.
아빠가 시인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은 가끔 시를 짓곤하는데 제법 솜씨가 있어 보인다.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해서 표현하는 능력이 또래 아이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니 흐뭇하다.
산길을 한참 오르니 갈증이 느껴져 약수터로 발길을 돌렸다. 산중턱에 자리한 약수터는 양이 많지는 않지만 맛이 좋은 편이다. 게다가 정자가 있어 잠시 쉬면서 산 아래 경치를 바라보는 것도 산행의 특별한 재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물줄기가 얼어서인지 약수는 나오지 않고 물받이도 매말라 있어 헛걸음만 했다.
약수터를 지나 산 정상으로 향했다. 등산로는 이미 눈이 녹았으나 산비탈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 있어 겨울산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나무계단을 거쳐 산정상에 오르니 봄볕이 더욱 따사롭다. 발 아래 도시는 휴일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동안 도시를 바라보다가 길을 내려갔다. 오던 길과 달리 계곡을 따라 내려갔더니 쌓인 눈이 녹지 않아 길이 미끄러웠다. 더구나 하산은 체중이 아래로 쏠리기 때문에 넘어지기 십상이다. 조심 조심 내려오니 사람들이 한 무더기로 산으로 올라오고 있다.
사람들은 산에서 봄을 기다린다. 도시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면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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