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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근대역사공간 원형 숨결 잘 살려야

목포 근대역사공간 원형 숨결 잘 살려야

 

목포시가 원도심 일대 근대역사문화공간 정비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는 올해부터 5년간 거리경관을 회복하고 노후화된 근대건축물 보수·정비를 통해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할 방침이다.
목포 원도심의 근대역사문화공간은 구한말 러시아, 영국, 일본 등 열강들의 이권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진 현장이자,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의 핍박과 설움이 흥건하게 고인 한(恨) 많은 땅이다.
일제 강점기에 목포는 일본인 거류지인 '남촌'과 조선인의 생활권인 '북촌'으로 크게 나눠져 있었다. 유달산 남쪽 지역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남촌 일대는 일제에 의해 격자형 신시가지를 갖춘 근대적 도시로 개발됐다. 반면 목포역과 유달산 사이 산비탈 면에는 개항 직후 목포 인근지역 농민들이 목포로 몰려와 부두 노동자로 살았지만 생활에 필수적인 상·하수도와 전기, 의료시설 등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빈민촌이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인천, 부산, 군산 등 다른 개항장에 비해 규모나 질적인 측면에서 월등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
지금도 일본영사관 건물뿐 아니라, 동양척식(현 근대역사문화관), 화신백화점(김영자 화실), 갑자옥(현 모자점) 등 당시 일본인 거류지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전국적 항일의 상징이었던 목포제유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파업현장, 암태도 농민항쟁 때 600여명이 배를 타고 건너와 투쟁했던 구 목포경찰서 등 항일의 상징과 유적, 그리고 선창에서 조선노동자들이 허기를 채우던 죽거리(죽동)까지 그 자체로 근대 역사가 담겨있는 문화의 보고이다.
또한 이곳은 60,70년대 최하림, 김현 등 걸출한 문인들이 교유하며 문학과 예술담론을 꽃피우던 예향목포의 자양분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근대역사문화공간 정비 사업의 핵심은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의 숨결이 잘 살아나야 한다. 일본거류지 뿐 유달산 사이 산비탈 면에 붙박혀 살았던 부두 노동자들의 삶도 생생히 조명되어야 한다. 관광객 유치만을 겨냥한 무분별한 재생사업은 장소에 깃든 역사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 원형의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 근대적 시대상을 탐색하고 역사적 교훈을 깨우치는 값진 역사문화유산으로 가꿔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