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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시가 고픈 날

시가 고픈 날

 

춥고 배고픈 날
빵 대신 시를 쓴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선택할 때
시인은 배고프다며 상대를 가라고 권하셨지만
나는 상대에서 경제학 공부 대신
시를 썼다
레포트 내는 날이면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시집을 읽고
다음날 학보사에 시 원고를 투고했다
그러나 시는 지면에 나오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를 읽으며
나를 자학했다
그리고 다시 시를 썼다
애인과 헤어진 후에도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나서도
시를 썼다
눈 내리는 겨울밤
시를 불쏘시개로 마음에 군불을 지폈다
가슴속 불덩이를 서툰 언어로 쏟아내며
젊은 날을 탕진했다
어느덧 중년이 된 지금도
춥고 배고픈 날에는
빵 대신 시를 쓴다
가난하고 외로웠던 유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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