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금남로에서
봄꽃이 진 자리에 신록이 눈시린
오월 어느날
평화로운 금남로 어귀에
역사의 새벽은 핏빛 낯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장막 뒤에 웅크리고 있던
야수의 무리들은 그 눈부심에 흠칫 놀라
심장이 터지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새벽 섬광이 점차 작렬하기 시작하자
광기에 취한 야수들은
살의 가득한 눈빛으로 금남로를 향해 돌진해왔다
날카로운 발톱과 단단한 이빨을 드러내며
일순간 금남로를 주검의 거리로 만들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의 신부도
열여덟 꿈많은 여고생도
학교 대신 공장에 다니던 한 소년도
목련 꽃잎처럼 창백하게 나뒹굴었다
하늘은 시퍼렇게 눈뜨며 내려다 보고
태양은 저들의 만행을 잔털까지 비추고 있는데
금남로는 핏빛으로 흥건하게 물들었다
고립무원의 섬,
외로움이 가슴속으로 타들어가던 금남로는
죽은자와 산자가 등나무 넝쿨처럼 서로 부둥켜 안고 울어야 했다
매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금남로는 죽은자와 산자의 동행이 이어지고
신의 가호가 봄 햇살처럼 가득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