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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오늘 광주에 첫눈이 소복이 쌓여 겨울 은세계를 연출했다. 어제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밤이 되자 눈으로 변해 도시를 온통 하얗게 덮어버렸다. 도로가 눈밭으로 변해 여기저기 교통사고가 나고, 아침 출근길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역시 눈이 내려야 겨울 정취가 느껴진다.
눈은 우리의 마음을 순수하게 정화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첫눈이 오는 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허공에 날리는 눈송이를 타고 잠시 유년시절로 거슬러 가보자.
어린 시절 우리집은 광산군 비아면 쌍암리에 있었다. 지금은 첨단단지 개발로 예전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대략적인 위치는 가늠할 수 있다. 현재의 쌍암호수공원이 당시에는 저수지였는데 우리집은 이곳에서 아주 가까웠다. 비아중학교 부근 우미아파트 자리쯤 될 것이다.
우리집은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조성한 과수원이었다. 인근에는 우리집 외에도 여러 과수원이 탱자울타리로 경계를 이루며 분포돼 있었다. 하나의 과수원 면적은 대략 야구장 크기만 하다. 그리고 사방이 탱자울타리로 둘러쳐 있으므로 성처럼 폐쇄된 공간을 형성한다.
완만한 구릉지에 펼쳐진 풍경은 비밀스러운 정원처럼 아늑했다. 그 안에는 감나무와 복숭아나무 등 100여 그루의 과수와 사이사이 밭이랑, 심지어 작은 호수가 어우러져 있다.
봄에는 나무마다 새움이 트고 분홍빛 복사꽃이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여름은 나뭇잎이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녹음으로 뒤덮인다. 가을에는 황금빛 감들이 주렁주렁 열리고 햇빛을 받은 홍시는 유혹적이어서 먹음직스럽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면 과수원은 더 없이 황량하다. 낙엽진 나무들은 그야말로 헐벗은 채 가지만 앙상하다. 저수지를 건너온 바람은 거칠게 양철지붕을 흔들고, 나무들은 회초리를 맞은 듯 비명을 질러댄다. 양철지붕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는 심장을 가를 만큼 섬뜩해 귀를 막곤한다.
눈발이 휘몰아치면 오히려 평화롭다.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부드러운 솜털이 덮이고 장독과 배추밭은 정물화처럼 윤곽선이 뚜렷하다.
이 무렵이면 낯선 손님이 찾아온다. 장총을 맨 코쟁이들이 지프차를 타고 비밀정원을 예고도 없이 방문한다. 미군들이 사냥을 위해 점박이 포인터와 함께 겨울들판을 누빈다. 이들은 우리집 과수원을 제집 드나들 듯 들어와 날아오르는 꿩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펑, 펑 소리와 함께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르던 꿩이 날개짓을 멈추고 땅에 곤두박질한다. 그러면 포인터가 날쌔게 달려가 꿩을 물어온다. 우리 형제는 코쟁이들을 따라다니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들의 사냥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겨울은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하느님이 창조해낸 하얀 영토를 누군가는 주인처럼 지배하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눈은 그래도 이 세상을 따뜻하게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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