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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배에 관한 추억(1)

배에 관한 추억(1)

 

1969년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3학년 1반 교실에 봄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토요일이었다. 내 책상은 창가쪽에 있었고 짝꿍은 김영주(가명)라는 친구였다. 그의 집은 우리 마을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미산마을이라는 곳이었다. 우리집 과수원을 지나 쌍암호수공원 저수지 뚝길을 지나면 미산마을이 보였다. 마을 초입에 방앗간이 우뚝 서 있었다.
그는 얼굴이 시커멓고 까까머리였는데 공부는 나보다 약간 잘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다부지고 야물어서 곧잘 발표도 잘하곤 했다.
토요일인지라 오전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책가방을 챙기느라 교실 안이 소란스러웠다. 나도 주섬주섬 책과 노트, 필통을 가방에 넣고 있었다. 그런데 영주는 무슨 일인지 움직이지 않고 부처님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가고 있었고 나도 일어 서서 갈 채비를 했다.
그 때 교탁 앞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여자 담임 선생님이 영주에게 다가와 “너는 왜 그렇게 앉아만 있어? 집에 가야지!”하고 말을 걸었다. 그래도 영주는 잠자코 앉아만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무슨 낌새를 챘는지 “너 옷에 똥쌌지?”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영주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예”라고 희미하게 대답했다. 어제 저녁이 제사날이어서 떡과 과일 등 음식을 과하게 먹었다 설사를 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로 그를 데리고 갈 참이었다. 그는 마지못해 일어서면서 가방 안에 있던 배를 꺼내서 내게 주었다. 그런데 나는 배에 똥이라 묻은 듯 꺼림칙하게 생각되어 받지 않았다.
나는 이듬해 4학년 초에 광주로 전학하게 되어 그 이후로 영주를 만나지 못했다. 지금도 간혹 그 추억과 함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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