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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극장의 추억

극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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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년의 나이라면 누구나 극장에 얽힌 추억이 많을 것이다. 1970~90년대는 ‘영화의 세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화가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광주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웬만한 시골에까지 영화관이 들어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필자 역시 영화관에 관한 추억 몇 개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처음 경험했던 영화관은 첨단 비아동에 자리한 비아극장이다. 읍내 초입에 들어선 비아극장은 비아시장과 더불어 비아사람들의 자랑거리였다. 도시문명의 상징인 영화관이 떡하니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눈이 부실 수밖에.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이곳에서 방공영화를 본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흑백스크린에 국군과 북한군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비아극장에 관한 보다 상세한 이야기는 ‘첨단 비아마을이야기’(2020, 지스트)를 참조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후 초등학교 4학년 초에 광주로 이사 와서는 광주에 소재한 여러 극장을 접하게 되었다.
그중 첫 번째 발길이 닿은 곳은 양동 광주천변에 위치한 한일극장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가 한일극장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영화를 보고 싶으면 한일극장 앞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관에 갔더니 친구와 또래 아이들이 매표소 부근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잠시 후 깔끔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나오자 다가가 “우리친구 좀 데려가 주세요”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마치 자기 자식이라도 된 듯 내손을 붙들고 기도에게 표를 건네주고 극장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주머니 손을 놓고 극장 맨 뒷좌석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당시 상영중인 영화는 나도향의 원작을 영화한 ‘벙어리삼룡’이었다. 벙어리 삼룡과 어여쁜 주인아씨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올 누드 장면이 10여초 동안 상연되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전라의 장면이 당시에는 허용되었다.


(2)

초등학교 재학시절 임동 방직공장 인근에 있는 M극장에서 단체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영화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고 필름이 심하게 훼손돼 내내 스크린에 빗줄기가 줄줄 흘러내렸다. M극장은 방직공장 여공들이 주로 찾던 영화관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돌렸던 필름을 싼 값에 가져와 상영하는 3류극장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람케 한 것도 그만큼 가격이 쌌기에 가능한 일이다.
A극장도 자주 갔던 곳이다. 명절이나 리싸이틀 공연이 있는 날에는 극장앞이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특히 남진, 나훈아 공연이 있는 날은 그 일대가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로 야단법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아이들과 A극장에 ‘빠이롱’(영화관 잠입)을 치러 갔던 일이 생각난다. 영화제목은 ‘꼬마신랑’이었다. 김정훈이가 주연이었다. 우리는 처음에 매표소쪽에서 동태를 살피며 요리조리 들어갈 구멍을 살폈으나 마땅히 뚫고 갈만한 공간이 없었다. 안되겠다 싶던 차에 나이 많은 동네형이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보자고 했다. 화재발생에 대비해 건물 외벽에 비상계단이 시공돼 있었고 건물안으로 들어가는 비상문이 있었다. 우리는 살금살금 비상계단으로 한사람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상문을 열려고 했으나 굳게 잠겨있어 열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내려와야 했다.
‘빠이롱’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K극장에서의 일이다. 동네 아이들과 호시탐탐 들어갈 구멍을 찾았으나 마땅한 구석이 안보였다. 그런데 그 중 한명이 매표소 옆 후문 밑으로 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납작 엎드려 순식간에 통과했다. 우리도 하나 둘 눈치를 보다가 문밑으로 스며들어 극장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 태연히 영화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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