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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서정시와 나의 문학세계

서정시와 나의 문학세계

 

박준수


흔히 시를 언어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언어의 특질을 살려 예술적으로 표현한다는 말입니다.
언어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예를 들면, ‘봄’이라는 단어는 겨울 다음에 오는 계절을 지칭하지만 ‘희망’, ‘생명’, ‘부활’ 등의 의미로 통용되기도 합니다. 이때 전자를 원관념(tenor), 후자를 보조관념(vehicle)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바로 이 보조관념을 연결고리로 해서 시인이 추구하는 상상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것입니다.
이같은 시의 특질을 놓고 문학이론가들은 ‘상징과 축약’, ‘유추의 세계’, ‘세계의 자아화’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에는 은유(metaphor)가 가장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루크리스의 겁탈’에서 시간을 ‘민첩하고 교활한 파발마’라고 표현했습니다. 시간이라는 원관념과 파발마라는 보조관념이 함께 갖고 있는 빠르다는 유사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김광균의 시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T.S. Eliot ‘황무지’에 나오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신동엽의 ‘껍떼기는 가라’, 김수영의 ‘풀잎’ 등의 시에는 이런 은유적 표현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은유는 ‘사물로써 사물을 설명하는’ 방식이며, 시작법의 기본원리입니다.
이런 시의 태생적 특질 때문에 문학으로서 권위를 굳게 지키지만 한편으로는 독자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오히려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좋은 시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양자간 이질감이 크면 클수록 긴장감(tension)이 높아져 시적 쾌감(신기함)을 더욱 크게 한다는 거죠. ‘청춘은 봄이다’, ‘마음은 거울이다’같은 표현은 분명 은유이지만 너무 진부합니다. 이런 은유를 죽은 은유(dead metaphor)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의 기본원리를 이해하고 좋은 시를 많이 읽다보면 시의 감춰진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시의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마치 클래식 음악이 초보자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처럼 들리지만 애호가의 귀에는 깊은 울림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요즘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대부분의 중앙지들이 시 코너를 만들어 매일 한편씩 좋은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코너를 빼놓지 않고 감상하며 즐거움을 맛봅니다.
요즘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시는 서정시입니다. 한마디로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시입니다.
서정시는 시의 가장 기원이되는 시입니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랫말이 오늘날 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정시를 영어로 lyric(歌詞) 이라고 합니다.
서정시는 전형은 낭만주의 시입니다. 윌리엄 워즈워드가 대표적인 시인이지요. 그는 낭만주의 시를 일컬어 자연세계에 대한 감정의 채색(coloring)이라고 했습니다.  
서정시는 통상 꿈과 이상향(유토피아)을 노래합니다.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들이 다시 원시상태의 유토피아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하는 게 서정시라는 것이죠. 따라서 시는 순수의 세계입니다.
이제 저의 시문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의 시세계는 어린시절 독특한 경험으로부터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집은 광산구 비아에 소재한 감나무와 복숭아 나무 과수원이었는데, 봄이면 복사꽃이 무릉도원을 연상케하고, 여름이면 녹음이 하늘을 뒤덮고, 가을이면 황금빛 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겨울이면 황량한 언덕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시심이 싹트게 된 것같습니다.
이런 정서가 자양분이 되어 사춘기가 되자 어설픈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낙서나 다름없었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김소월, 김영랑, 박용철, 한하운 등의 시를 읽으며 흉내를 내기 시작한거죠.
처음으로 전남대 학보에 ‘철조망’이라는 저의 시가 발표되었습니다. 마치 시인이 된 것처럼 기쁘고 흥분됐죠. 그 이후로 학창 시절 내내 문학에 심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연유로 대학졸업 후 직장도 신문사를 선택해 오늘까지 만 25년 신문기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시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겪은 일들을 회상과 관조의 화법으로 표현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시이니만큼 보조관념을 이용한 상징과 은유, 함축 기법이 적용되고 있지만 거기에는 저만의 독특한 감정의 채색(coloring)이 곁들여 있습니다.
김현승 시인의 ‘견고한 고독’처럼 저 역시 시 저변에는 고독, 우울, 비탄이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속에서 저편의 밝은 빛을 찾아나서는 구도자같은 고행이 담겨 있습니다.
저의 문학세계는 상처 입은 영혼에 대한 연민이 짙게 묻어나는 고해성사의 과정입니다. 저는 시로부터 치유와 평안을 보상받습니다. 결국 자기고백, 자아성찰, 스스로의 위안이 저의 문학의 원천이고 시입니다. 
최근 의료영역에서도 문학치료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200여 년 전부터 정신질환 치료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무의식속에 있는 내면의 갈등이 표출되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정신적 치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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