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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라진 과수원

사라진 과수원

 

1993년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토지공사(현 LH공사)로부터 비아 과수원안에 있는 묘지를 이장해가라는 통지가 왔다는 것이다. 광산 비아와 북구 삼소동 일대가 첨단단지로 지정돼 토지공사에 의해 본격적인 사업 착수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 보상작업이 마무리되고 이주가 이뤄진 상태에서 마지막 묘지이장이 진행되는 시점이었다.
나는 주말을 이용해 이장작업을 하자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약속한 날에 내가 살던 양3동 발산마을 아파트를 나서서 승용차로 비아과수원에 도착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먼저 오셔서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과수원 현장은 이미 지장물 철거작업이 거의 마쳐진 상태로 허허벌판으로 변해 있었다. 탱자울타리도, 양철집도, 과일나무도 내가 뱀을 보고 줄행랑을 쳤던 연못도 자취를 감추었다.
일부 양철집 철거 잔해만 남아있어서 이곳이 집터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과수원 안에는 3기의 분묘가 있었다. 2기는 과수원 위쪽에 나란히 둥근봉분이 누워있었는데 그중 1기는 작은할머니 묘소였고, 옆에 1기는 잘 기억이나지 않는다. 나머지 1기는 양철집 뒤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묘를 산에 쓰지 않고 과수원에 쓰게 된 사연은 이렇다. 작은할머니께서 시집을 오셨는데 결혼 후 1년도 되지 않아 작은할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말그대로 청상과부가 되셨다. 그렇게 홀로되신 작은할머니는 재가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시면서 아버지를 돌보셨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가신 날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려서 도저히 산으로 모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과수원 안에 유택을 마련한 것이다. 양철집 뒤안에 자리한 1기는 시신이 없는 가묘였다. 가묘의 주인은 6·25때 사망한 큰 아버지로 시신을 찾지 못해 위폐만 모신 것이라고 작은아버지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먼저 2기 파묘작업을 시작했다. 소주잔을 올리고 간단히 제사를 지낸 다음 무덤을 해체했다. 수십년이 흐른 오래된 무덤이라 유골은 많지 않았다. 증빙을 위해 사진을 찍고 유골을 수습했다.
이외에 할아버지 묘소가 비아읍 입구 문중 선산에 모셔져 있었다. 비아초교 건너편에 야트막한 야산이 순천박씨 선산이었다. 그 무덤 역시 파보니 유골 일부가 흙무더기 속에서 발견되었다. 유골은 어머니가 잠들어 계신 화순 춘양 대신리 가족묘지로 이장하였다.
그렇게 조상들의 유골마저 옮기고 나니 유년시절의 숨결이 배인 비아과수원은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졌다. 건설장비를 동원해 기존의 구릉지를 허물고 지반을 평탄하게 만들었으니 그 위에 모든 흔적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다만 내 기억속에만 오롯이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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