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수확
우리집 과수원에서 과일 수확은 여름과 가을 두 차례 이뤄진다.
여름에는 복숭아, 가을에는 감을 딴다.
그러나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라 솎아낸 어린 열매도 훌륭한 먹거리가 된다.
단지항아리에 물을 부어 어린 열매를 며칠 담궈놓으면 떫은 맛이 없어져 먹을만하다. 이렇게 하는 것을 ‘우려낸다’고 한다. 이 무렵 우리집에는 종종 동네 아이들이 찾아와 솎아낸 열매를 주워가곤 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목에 힘을 주며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시기이다.
복숭아는 때깔이 고와야 상품가치가 높다. 그리고 풍뎅이들이 복숭아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린 열매를 솎은 후 쓸만한 것을 골라 봉지로 싸주어야 한다. 봉지 싸는 일은 동네 아가씨와 아줌마들 몫이었다. 이들은 핀이 담긴 깡통을 허리에 차고 열매마다 일일이 봉투를 씌워준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아가씨들이 사다리에 올라 하나씩 봉지를 싸는 장면은 한폭의 평화로운 농촌의 전경을 보여준다. 여름 태양이 뜨거워질 무렵 과수원은 다시 분주해진다. 복숭아 열매가 살이 통통 올라 분홍빛 새색시 얼굴처럼 탐스럽게 익어서 출하시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때에도 동네 아가씨와 아줌마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잘익은 복숭아를 골라 전정가위로 꼭지를 잘라내 나무상자에 차곡차곡 담는다. 그리고 트럭에 실려 광주 양동시장으로 팔려나갔다.
나는 종종 복숭아밭에 들어가 물이 차오른 황도를 따먹기도 하고 열매에 달라붙은 풍뎅이를 잡아서 가지고 놀곤 했다.
가을이 깊어가면 감나무에 매달린 감이 노랗게 익어서 그야말로 황금빛을 띤다. 감나무는 복숭아나무와 달리 높은 곳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남자들의 몫이다.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가 장대로 나뭇가지를 꺾어서 따는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보통 가지끝에 여러개가 한꺼번에 달려 있다. 또 홍시감은 장대끝에 신발주머니같은 것을 매달아 꼭지가 떨어져도 주머니에 들어가서 상하지 않도록 한다.
수확한 감은 판자로 엮어 짠 나무상자에 담겨 광주 양동시장 공판장으로 실려간다.
과일들은 수확철 외에 비가오는 날 많이 낙과된다. 여름철 소나기가 태풍과 함께 며칠씩 쏟아지고 나면 나무밑에는 여기저기 과일들이 널려있다. 우리 형제들은 비가 그치고 나면 바구니를 챙겨들고 땅에 떨어진 과일을 줍느라 분주해진다. 그때 과일나무 숲에서 맡는 신선한 공기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달콤하다. 지금도 간혹 비가 긋고 지나간 숲속을 걸으면 그와 비슷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유년시절 과수원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