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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서재에서의 낯선 일상

서재에서의 낯선 일상

 

명패를 내려놓고 명함을 지웠다

그리고 순수한 시간의 자리로 돌아왔다

반겨주는 이는 벽에 기대인 책들뿐

그리고 창에서 흘러들어오는 세상의 소리들

창밖은 그저 풍경화처럼, 아니 영화처럼 흘러간다

나는 이제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일 뿐이므로

책들은 간택을 기다리는 들꽃과 같다

저마다 어여쁜 이름과 향기를 품고 있다

그들은 나의 손길을 기다리며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한다

그들은 나에게 기호로 세상의 비밀을 전해 준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서 신문 대신 문학계간지를 읽는다

읽고 쓰는 습성을 버리지 못했으므로

기호를 맞추고 해석하고 버무린다

책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간혹 하늘에는 비행기가 장난감처럼 날아가고

호롱불을 켠 기차가 쇠바퀴를 굴리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책들이 빽빽이 숲을 이룬 서재에는

종소리 아득히 가슴에 파문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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