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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가을 어등산

가을 어등산


8월 마지막주 일요일 오후 어등산 산행을 다녀왔다.
퇴직 후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 가운데 하나가 산을 가까이 하는 일이다. 
무료한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다면 산행을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피곤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산행을 하기가 쉽지않다. 하지만
백수생활을 시작하면서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등산하기가 훨씬 용이해졌다.
어등산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 초입부터 가파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한달 전만 해도 계단을 오르고 나면 숨이 가쁘고 기진맥진했으나 그동안 여러번 오르고나니 이제는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오늘도 평지를 걷듯이 가볍게 정자까지 단숨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잠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숲속으로 등산로가 굽이굽이 이어진다. 어등산 등산로는 대체로 평이해서 걷는데 크게 힘들지 않다. 그러나 요사이 비가 계속해서 내리면서 등산로가 젖어 있거나 빗물에 패인 곳이 많다. 
또한 비바람에 밤나무가 요동을 쳤는지 밤송이들이 여기저기 우수수 떨어져 있다. 하지만 모두 빈 껍질만 남아 있다. 먼저 다녀간 등산객들이 이미 알맹이를 모두 거두어 가고 속빈 밤송이만 흩어져 있다. 
발걸음은 약수터 삼거리를 지나 전망대를 향해 나아간다. 오전에 비가 온 탓인지 주말임에도 등산객이 드문드문하다. 비가 내린 후 산속은 한층 가을 기운이 느껴진다.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사이 나무데크로 만들어놓은 전망대에 도착했다. 등산을 시작한 지 대략 1시간20분 정도 소요된다. 전망대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저만치 산 아래 울창한 숲 사이로 어등산 골프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주말 골퍼들의 모습이 자그맣게 보인다. 간혹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읽기도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안좋아 그냥 앉아 있다가 하산하기로 했다. 
휴식을 마치고 왔던 길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언제나 그렇듯 내려가는 길은 가볍고 경쾌하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이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다가 약수터 삼거리를 지날 무렵 청설모 한 마리가 밤나무에서 내려와 등산로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바로 곁에 사람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아랑곳않고 요리조리 재빠르게 주변을 탐색한다. 아마도 비바람에 떨어진 밤송이를 찾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들의 겨울식량을 사람들이 주워가버렸으니 얼마나 속이 상할까. 말못하는 짐승의 억울한 마음에 내내 신경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