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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뽕뽕다리’와 방직공장에 대하여

뽕뽕다리와 방직공장에 대하여

도시재생은 그 지역 주민들에게 삶의 만족감을 높여주어야

 

 

1970년대 광주 양동 발산마을과 임동 방직공장을 연결해주던 ‘뽕뽕다리’ 

1970년대 양동과 임동 사이 광주천에 걸쳐 있다가 사라진 뽕뽕다리가 재현될 것이라고 한다. 서구 양동 발산마을과 북구 임동 방직공장을 연결하던 이 다리는 공사장의 구멍뚫린 철판을 엮어 만든 철제다리로 독특한 형태뿐 아니라 방직공장 여공들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당시 발산마을에 집단거주하는 여공들은 매일 이 다리를 이용해 방직공장을 오갔는데, 이곳에서 일어난 사연들은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절절하고 애틋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장소에 대한 풍경은 그 대상물이 사라진 후에도 오랜 세월 사람들의 집단기억 속에 자리한다. 이처럼 특정 장소에 대한 인지된 물리적 특질을 장소성(場所性)’이라고 한다. 장소성이란 어느 공간이 인간의 경험과 문화가 쌓여 다른 장소와 구별되는 총체적인 특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이 깃들어 있어 친밀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광주 도심에 재개발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장소성이 상실돼가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오랜 시간 형성된 동네가 어느 순간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과거의 흔적들이 지워져 버리고 아파트 숲으로 바뀌면서 그곳에 축적된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의 경우만 보더라도 동구 중흥동, 서구 양동·월산동·광천동, 남구 방림·주월동, 북구 중흥동·유동·임동 등 곳곳에서 도시정비사업과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옛 모습과 흔적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특히 북구 임동에 자리한 일신전남방직 공장에 대한 근대산업유산 보존 문제는 장소성과 관련하여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다. 공장 노후화에 따른 설비이전으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도시계획변경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보존범위를 놓고 개발업체와 광주시 및 시민단체간 줄다리기가 팽팽한 상황이다.

도시재생 혹은 재개발사업은 산업화·도시화가 빨랐던 유럽 도시들에서 일찍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럽국가들과 우리나라 도시재생 방식은 매우 상이한 차이점을 보인다. 유럽은 제조업의 쇠퇴로 낙후된 지역을 문화를 매개로 창조도시를 건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른바 빌바오효과이다. 스페인 빌바오시는 조선·철강 산업이 쇠퇴하자 문화와 예술을 접목해 도시의 경쟁력을 높였다.

영국에서 빌바오효과를 거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포크스톤(Folkstone)지역이다.

한적한 해변 휴양도시인 이 곳은 구 시가지 일부를 개발해 현대미술관을 짓고 포크스톤 트리엔날레를 개최해 소금기어린 도시를 예술관광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영국 제2의도시 버밍엄(Birmingham)은 오래 전 가동이 멈춘 카스테라 빵공장을 개조해 젊은이들이 창조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창작스튜디오를 꾸몄다. 이곳에는 모두 500여 명의 예술가와 소규모 창조기업이 들어와 역동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표면적으로는 낙후된 도시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도시재생의 명분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 진행과정에서는 부동산개발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자본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능한 층수와 용적율을 높여 아파트와 상가를 최대한 늘리는 고밀도 개발에 치중하고 있다.

광주에서의 고밀도 재개발은 비단 특정지역 역사와 정체성의 소멸뿐 아니라 광주정신의 상징인 무등산 경관마저 시야에서 가려버림으로써 공동체의 구심점을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그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장소에 대한 애착과 문화적 연대감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속가능한 도시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개발 과정에서 개발주체의 이익을 줄이더라도 그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만족감을 높여주어야 한다.

영국 킹스칼리지 지리학과 교수 로레타 리즈는 도시재생이 사회적 관점보다는 경제적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원주민과 저소득집단이 배제되지 않는 예술주도 도시재생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다운 도시재생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폭우에 휩쓸려 사라진 뽕뽕다리하나를 재현한다고 해서 성취되지 않는다. 광주의 유구한 역사와 정체성,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면서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생태문화도시를 건설하는 공동체의 노력이 절실하다. 그 길만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를 지속가능한 선진 문화도시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