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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영산강에서 물고기를 방생하다

바위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 발견해서 방생...우리사회 어려운 이웃은 없는지 


우산동으로 이사온 지 4개월만에 영산강변을 걸어보았다. 그 전에 잠시 인도교를 걸어본 적이 있으나 이 때는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중순이라 오래 걷지 못하고 잠깐 눈요기하는 정도였다.
때 마침 추석연휴를 맞아 서울에 사는 작은딸이 내려온 참에 아내와 함께 강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아파트에서 강둑까지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걸어가기에는 불편한 곳이다. 좁은 농로를 이용해야 하므로 차와 접촉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설령 차를 타고 가더라도 마땅한 주차공간이 없어 옹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고민끝에 차를 가지고 가서 강둑 한켠에 요령있게 차를 세워두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차로 이동했다. 아파트에서 차를 타고 화훼단지를 거쳐 강둑도로에 도착해 가까스로 배수장 입구 빈공간을 찾아 주차를 했다. 
쌩쌩 달려오는 차들의 행렬을 피해 횡단보도를 건너 양안에 걸쳐 있는 인도교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 다리는 오로지 자전거와 사람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어서 마치 전망대에 오른 것처럼 한가롭게 강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인도교 난간에 기대어서 주변을 바라보니 맑은 가을 하늘아래 드넓은 공간이 가슴을 확 트이게 만든다. 가끔씩 공항에서 막 이륙한 여객기가 굉음을 내며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비행기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걸까. 서울 혹은 제주도....? 해외여행은 언제나 갈 수 있을까?
저편 지평선에는 쭈뼛쭈뼛 솟아오른 고층빌딩과 소백산맥 줄기가 어우러져 도시의 실루엣을 그려낸다. 
그렇게 10여 분간 다리 위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강 고수부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걸어보기로 했다. 고수부지에는 억새풀 군락이 허리춤까지 목을 세우며 가을을 향해가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가볍게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로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던 중 작은딸이 강수로쪽으로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오솔길이 나 있는 걸 발견하고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함께 가보자고 하였다. 억새풀 사이 길을 따라 50여m를 들어가니 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강가 이곳저곳에는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물고기가 잡히기를 학수고대하며 강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강물 가까이 다가가자 공간이 나왔는데 평평한 바위가 구들장처럼 비교적 넓게 분포돼 있었다. 마치 해변가 갯바위를 보는 듯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구들장 바위 군데군데 움푹 패인 곳에는 지난 며칠새 내린 비로 인해 물이 고여 있었다. 강물가까이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중 딸이 “여기 커다란 물고기가 있어요. 아직 살아 있어요”라고 외쳤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접시물처럼 얕은 웅덩이에 팔뚝만한 잉어가 몸을 옆으로 기운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마도 불어난 물이 차오를 때 이곳에 있다가 물이 빠져나가면서 이곳에 갇힌 모양이었다. 딸이 “아직 물고기가 살아있으니 살려주자”고 말했다. 나는 몸이 옆으로 기운 것으로 보아 곧 죽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딸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잉어를 붙잡자 퍼드득하고 용을 쓰면서 손에서 미끄러졌다. 큰 덩치에 비해 물이 옅어서 몸이 기운 것이지 아직 쌕쌕하게 살아 있었던 것이다.  두세번 놓친 끝에 겨우 붙잡아서 강물에 던져주자 금새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후 딸이 또 다른 웅덩이에서 똑 같이 갇혀 있는 물고기를 발견했다. 이 물고기는 버들치처럼 생겼는데 굉장히 민첩했다. 몸집이 작아서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놔두면 얼마안가 말라죽을 게 분명해서 기어코 잡아서 강물에 놓아주었다. 

두 마리의 물고기를 발견해서 방생해주니 우리 가족 모두 기분이 좋아졌다. 이들에게는 큰 행운인 셈이었다. 만일 우리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왔더라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녀석들은 그대로 말라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나와 산책로를 걸으면서 내내 그 물고기들의 운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 어려운 처지에 처했을 때 그 상황을 동정하고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다면 불행의 수렁에서 건져질 수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주변에 힘든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위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처럼 생사의 갈림길에서 위태롭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한번쯤 주변을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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