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처갓집 풍경을 탐하다

흙집 뒤안에는 대나무숲, 곳곳에 손때묻은 추억이......

마당에 서면 저 멀리 월출산, 가까이에 우람한 당산나무

 

추석명절을 맞아 영암 시골마을 처갓집을 다녀왔다. 결혼한 지 30년쯤 되니 이제는 처갓집이 내 고향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처가에는 팔순이 훌쩍 넘은 장모님이 혼자서 오래된 흙집을 지키고 계신다. 몸집이 작고 키가 낮은 흙집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깊은 주름이 졌다. 10여년 전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벌여 겉모양은 그런대로 멀쩡하지만 내부는 낡고 삐걱거린다.

그래도 그 좁은 둥지에서 6남매를 번듯하게 키우시고 한 생애를 무탈하게 지내오셨다.

나는 처가에 올 때면 집주변 이곳저곳을 둘러보곤 한다. 구석진 자리에 널려있는 옛 농기구들과 생활용기들을 보면서 진한 향수를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집 뒤편 뒤안에는 소박한 대나무숲이 정감있게 뻗어 있고 몇 그루의 포도나무가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작은 옥구슬같은 청포도를 송이송이 매달고 있었는데, 돌보지 않은 탓에 열매는 말라죽고 잡초가 무성하게 점령하고 있었다. 벽면에는 쓰임새가 다한 석쇠와 둥근체가 덩그러니 걸려 있다.

집 측면으로 장독대와 우물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장독대는 장모님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다.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옹기종기 모여있다. 주위에는 채송화, 맨드라미, 코스모스 혹은 고추나 참외가 제 홀로 피어있기 마련이다. 처갓집 장독대에는 고추나무 두 그루가 수줍게 서 있다.

바로 옆 우물은 아주 귀한 보물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 깊진 않지만 한 여름 가뭄에도 샘이 마른 적이 없다. 또한 물 맛이 좋고 수질검사에서도 음용수로 양호하다는 결과가 나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이 샘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상수도처럼 사용하고 있다. 나는 가끔 이 물을 호스로 연결해 차를 세차하곤 한다.

마당을 돌아 반대편 집모퉁이에는 수확해서 보관해둔 마늘다발, 농작업 때 쓰던 장화, 녹슬어가는 간이정미기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마당 가장자리에는 장인 어르신이 생전에 운전하시던 경운기가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고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쇠스랑과 삽, 괭이, 분무기, 저울 등 각종 농기구와 벼와 잡곡 등 수확한 농산물이 보관돼 있다.

집 안팎을 스케치하듯 그려보았는데 집 바깥도 제법 걸진 풍경이 펼쳐져 있다. 마당에 나서면 저 멀리 기암괴석을 품고 있는 월출산이 한눈에 보이고 가까이에는 동네 당산나무가 우람한 풍채를 자랑하며 듬직하게 서있다.

노을이 하늘을 붉게 치장하다가 차츰 어둠에 밀려나면 저 멀리 월출산으로부터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다. 달은 역시 월출산에서 잉태된 보름달이 운치있고 멋스럽다. 국민가수 하춘화의 민요풍 가요 영암아리랑은 그런 곡직한 풍경을 아름답게 읊은 노래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은퇴자들은 산으로 가는가  (0) 2021.10.03
여수 한려동 탐방  (0) 2021.09.30
영산강에서 물고기를 방생하다  (0) 2021.09.19
추석이야기  (0) 2021.09.17
행상 할머니로부터 화장지를 샀더니 일어난 일  (0) 2021.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