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무엇인가(4‧끝)
“상상력으로 일상에 순화된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나의 시적 목표이다”
앞 3부에서는 문학이론가들과 유명 문인들이 설파한 시의 정의를 살펴보았다. 저마다 시의 본질을 꿰뚫은 통찰력 있는 정의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제 우리 지역 시인의 시적 정의를 살펴볼 차례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봄비’로 널리 알려진 이수복 시인(1924~1986)의 시 「그 나머지는」 시적 탐구에 대한 사유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수복 시인은 전남 함평 출신으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시문학파의 영향을 받아 향토색 짙은 서정시를 써온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 시는 왜 노을에 비끼는 고원지대를 노을에 비끼는 고원지대 그것으로서만 서경(敍景)하지 못할까. 거기에다 왜 무슨 천고의 비밀이라도 쭈굴시고 앉아서 새김질하고 있는 듯한 스핑크스나 그런 류의 저무는 표정을 새기려고만 들까.
내 시는 왜 자강불식(自彊不息) 돌고 있는 해와 달과 뭇별을 자강불식 돌고 있는 해와 달과 뭇별 그것으로서만 살피고 창랑의 파도소리를 창랑의 파도소리 그것으로서만 듣지 못할까. 왜 내외로 있는 여러 일을 내외로 있는 여러 일 그것으로서만 끄덕이고 그 나머지는 잠점해 버리지 못하는 걸까.” (시 「그 나머지는」 전문)
이 시는 이수복 시인 본인의 시작(詩作) 태도에 대한 깊은 고민을 시의 형식을 빌어 토로한 글이다. 얼핏 보기엔 사물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 내면에 깃든 뭔가를 찾아내려고 끙끙거리는 자신의 덧없는 노력을 자책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시의 논지는 ‘여러 일을 내외로 있는 여러 일 그것으로서만 끄덕이고 그 나머지는 잠점해 버리지 못하는 걸까’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이 글의 참 의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안타까워 하는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표면적 진술과 정반대로 해석해야 올바르게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나의 시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우리는 국어 교과서에서 음악성(운율)-회화성(이미지)-철학성(주제) 3박자를 모두 갖춘 시가 좋은 시라 배운 바 있다. 원래 시는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고대에 시가(詩歌)는 한 몸이었다. 근세에 이르러 음악과 분리되면서 회화성과 철학성이 강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현대시는 극단적으로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독자와 평론가들에게 매우 곤혹감을 느끼게 한다. 사회가 첨단 문명으로 치달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과격한 탈모더니즘 혹은 초현실주의는 자가당착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시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모체로 태어난 예술이다. 아무리 거친 언어로 표현되더라도 감성이 배어 있으면 시가 될 수 있다. 반면 아무리 세련된 문장의 시라도 감성이 메말라 있으면 생명력 없는 조화에 불과하다.
다시 3부로 돌아가서 시에 대한 여러 정의를 반추해보면, 필자는 W. 워즈워드의 시 세계를 추구한다. 상상력으로 일상에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어 순화된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나의 시적 목표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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