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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의 풍경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4) 양동복개상가의 추억

(4) 양동복개상가의 추억

 

양동시장 주변 광주천에는 불법으로 들어선 목조상가들이 난립해 있었다. 하천부지에 기둥을 세우고 도로와 맞닿게 일렬로 세워진 상가건물들은 광주일고 방향에서 건물의 뒤편을 바라보면 2층 구조로 돼 있어 외관상 독특한 풍경을 이루었다. 하천과 인접한 1층 공간은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도로와 접한 2층은 상가로 사용되었다. 이들 상가는 옷가게와 가구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구점인 경우 가게 한켠에서 직접 가구를 제작하는 집도 있는데 두레박으로 광주천 물을 길어서 사포질에 사용하였다.

이들 목조상가는 일종의 무허가 판자집이지만 권리금이 꽤 비싸게 거래되었다. 나중에 막차로 상가를 매입한 사람들은 큰 낭패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광주시는 광주천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목조상가를 정비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 대안은 복개상가를 지어 이전하는 방법이었다. 요즘 생각해보면 환경을 파괴하는 무모한 행정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책이었을 것이다.

양동복개상가가 완공된 것은 6학년 2학기 졸업 무렵이었다. 그걸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집안아저씨가 복개상가 공사장에서 상판바닥 시멘트 작업을 하고 계시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 이듬해 봄에 복개상가 광장에서 열린 국회의원 선거 유세현장을 직접 참관하였다. 그때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 광주지역 언론사 창업주 K씨였다. 그는 신사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연단에 나와 연설을 시작하였는데 그가 에피소드 한토막을 들려주었다. “목욕을 하고 나오는데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웃길래 왜 그런가 하고 옷매무새를 살펴보았더니 셔츠를 거꾸로 입고 있었다고 말한 대목이 생각난다.

복개상가가 완공되면서 광주 양동시장은 호남 최대의 상권으로 부상했다. 당시 복개상가는 요즘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현대식 복합상가로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1층은 상가이고 2층은 아파트 형태의 주거공간이었다. 특히 복개상가는 가구점과 침구점이 많아 신혼부부들은 반드시 이곳에서 혼수품을 장만해갔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간혹 이곳 옥상에서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편, 복개상가는 2차로 추가 건설계획이 있었지만 시멘트 기둥만 세운 상태에서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