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뽀빠이 과자봉지 이야기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 ‘뽀빠이 과자’가 새로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과자는 S라면 회사가 출시한 제품으로, 라면 부산물을 기름에 튀겨서 만든 것으로 꽈배기와 비슷하다.
고소한 맛에다 가격도 저렴해서 아이들에게 최고의 군것질 품목이었다. 나도 돈이 생기면 구멍가게로 달려가 이 과자를 자주 사먹었다.
요즘에도 상표명은 다르지만 마트에 가면 유사한 제품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자봉지 그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봉지의 디자인을 보면 뽀빠이가 해군 제복을 입고 오른쪽 팔의 근육을 자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배경 색상은 위쪽은 빨갛고 아래쪽은 파랗게 배치되었다. 당시 뽀빠이는 TV만화 영화 주인공으로 여자친구를 괴롭히는 악당들을 혼내주는 캐릭터로 인기가 높았다.
어느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서 노는데 한 친구가 “뽀빠이 과자 그림에 간첩의 지령이 담겨있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긴장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당시는 간첩이라면 엄청 무서운 존재였다. 밤에 무전으로 교신하고 비밀리에 군사시설을 정탐하고 때로는 독침으로 사람도 죽이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그래서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하면 즉시 신고하라는 교육을 수시로 받았다. 그리고 신고를 하면 거액의 포상금을 준다며 대대적인 선전이 이어졌다. 또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교내에서 표어, 포스터 그리기와 웅변대회가 열려 온 국민이 간첩잡기에 열을 올리던 때였다.
이런 비상시국에 감히 과자봉지에 간첩지령이 담겨 있다니 놀라서 자빠질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친구의 말인즉, 봉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한반도 지도에 38선이 그어져 있고 위쪽 빨간색은 북한이며 아래쪽 파란색은 남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뽀빠이가 입은 해군제복 소매를 보면 닻모양의 해군마크가 남쪽을 향하고 있어 김일성이 남침을 지시한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그럴듯한 해석을 듣고 보니 정말 뽀빠이 그림이 남침을 상징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이야기는 한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아이들 두셋이 모이면 어김없이 ‘뽀빠이 간첩’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 구내방송에서 “뽀빠이 갑첩 이야기는 유언비어이니 현혹되지 말라”는 당부가 흘러나왔다. 그 방송을 듣고도 우리는 한동안 간첩의 지령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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