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사에서 시작한 무양중학교
비아에 6·25 동란 중인 1951년 6월 12일 탐진 최씨 문중이 설립한 무양중학교가 개교했다. 무양중학교는 오늘날 비아중학교의 전신이다. 무양중학교는 첨단단지 조성을 계기로 1992년 11월 28일 교명을 비아중학교로 변경했다. 무양중학교는 1950년 4월 28일 재단법인 무양서원 설립인가를 받아 한국전쟁 중인 1951년 6월 12일 개교했다. 무양중학교가 위치한 땅은 원래 누에를 키우는 잠사(蠶舍)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졌다. 황토 토질이 좋아 뽕나무 재배에 적합했다.
광산구청 토지대장 확인 결과 비아동 724번지는 1938년 1월 12일에 조선생사주식회사 소유로 되어 있다. 조선생사주식회사는 대구에 본사를 둔 일제강점기 때의 기업으로 견직물의 원료인 생사(生絲)를 생산하는 회사이다. 아마도 이 회사 소유의 뽕밭과 누에를 키우던 잠사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무양중학교의 학군은 비아, 하남, 장성 남면, 장성 진원, 지산면 등 5개 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는 비아장의 상권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첨단단지가 들어서면서 비아중학교는 당시 자리에서 조금 옮겨 현재 위치로 재배치됐다. 과거 중학교 부지 상당부분이 현재 광주과학기술원(GIST) 부지로 편입된 상태이다.
1961년 입학한 서인섭 씨는 “무양중학교는 학교 시설이 열악했다. 교실 마룻바닥이 뜯어져 바닥 흙이 보이기도 했다. 학교 옆에 과수원이 있어 학생들이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가 과일(배)을 따 먹기도 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박흥식 비아농협조합장(58년생)은“무양중 이사장은 아주 엄하고 강직한 분이셨다. 광주시내에서 출퇴근하지만 관사에 머물면서 학교살림을 꼼꼼히 챙겼다”고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1960년대 무양중학교에서는 추석이 다가오면 교내 축제를 벌였다. 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해 강강술래와 태권도 시범 등을 선보이고 떡과 과일 등 맛있는 음식도 대접했다. 휘영청 보름달 아래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강강술래를 노래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어린 가슴에도 뭉클한 장면이었다. 손에 손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군무를 펼치는 여학생들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 듯 아름다웠다.
1960~70년대 재학생들의 수학여행 장소는 주로 충남 부여 혹은 경주였다. 소풍의 경우 광주공원과 사직공원을 둘러보고 현대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으로 일정이 짜여졌다.
역대 교장의 출신대학을 살펴보면 개교 초창기에 대부분 일본에서 공부한 유학파가 많다는 것도 특징적이다. 또 이사장 가운데 이름난 인사로는 2대 최상채 박사는 전남대 초대 총장을 지냈고, 5대 최정기 이사장은 6대 국회의원과 전남도교육감을 역임한 인물이다.
1990년대 초 첨단단지 조성공사 기간 동안 학교는 이주민들이 떠나면서 거의 폐교나 다름없을 정도로 소규모 학교로 축소됐다. 채 100여 명도 안 되는 학생과 교사 몇 명, 직원 2명 등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
빈 교실은 광주과기원이 설립준비를 위해 빌려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변은 온통 공사장으로 변해 황토밭으로 바뀌었다. 비아중학교 옛 교실 일부가 현재 남도굿마당 건물로 이용되고 있어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무양중학교는 학교 주변에 과수원과 전답 등 많은 수익재산을 가지고 있어 첨단단지 개발과정에서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다. 현재도 첨단단지 주변 여러 곳에 자투리땅을 소유하고 있다.
무양중학교는 첨단단지로 편입돼 폐교위기에 놓이자 광주시내 금호지구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금호지구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이전계획을 포기하고 그대로 첨단단지에 남게 되었다. 결국 보상금을 가지고 현재의 위치인 월계동 904번지에 1995년 1월~1996년 2월의 교사신축 공사를 거쳐 교명도 비아중학교로 바꾸고 현재의 학교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학교 부지는 1만 4,422㎡(약 4,300평)로 27개 학급에 1,078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은 명문학교로 발돋움했다.
특히 바로 가까이에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개교하면서 교수와 행정직원, 연구원 자녀들이 이곳으로 진학하자 면학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리고 학부모들이‘학부모 독서회’를 조직해 독서지도와 가죽공예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학교로 발전했다. 한때는 비아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9년 1월 31일 현재 제69회 졸업생까지 누적 졸업생은 12,109명(남 6,407명, 여 5,702명)이다. 현재 비아중학교는 광산구내에 고등학교가 부족해 광주시교육청의 인가를 받아 고등학교(남녀공학)로 전환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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