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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광주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광주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박준수 시인경영학박사

 

지난 8월 둘째 주 여름 휴가차 가족과 함께 휴전선과 인접한 강원도 고성엘 다녀왔다. 1999년 김대중정부 시절 금강산관광을 위해 잠시 들른 지 20여 년만에 두 번 째 방문이었다. 광주에서 승용차로 왕복 12시간 넘게 걸려 고성을 다녀오는 동안 필자의 뇌리에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복잡한 현재 상황을 곰곰이 곱씹어 볼 수 있었다.

넓게는 남북분단과 통일문제에서부터 좁게는 지방소멸과 지역격차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공간 지점에서 떠오르는 생각의 편린들이 현실세계와 겹쳐지며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강원도 고성은 625 당시 가장 격렬했던 피어린 전투 현장이자 철조망으로 북한과 경계선을 긋고 있는 분단의 현주소이다.

 

안갯속 통일전망대 적막감 가득

 

통일전망대를 가기 위해 서둘러서 숙소를 나서 출입사무소에 도착하니 오전 이른 시각임에도 수많은 차량들이 길게 대기하고 있었다. 신고서 작성과 교육을 마치고 검문소를 통과해 통일전망대로 향하며 차창 밖을 바라보니 해안을 따라 늘어선 철책선이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언덕에 우뚝 솟은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니 저만치 안개에 가려진 금강산이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냈다. 필자가 20여년 전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올랐던 바로 그 북녘 산을 다시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망원경으로 풍경을 클로즈업해서 살펴보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측 초소와 북측 초소가 지척에 마주 서있고, 북으로 향하는 남북연결 철길이 고즈넉하게 누워있다.

한때는 이 철길이 물자가 오가고 사람이 왕래하는 남북교류의 상징이자 유라시아철도의 길목이 될 것이란 기대감을 안겨주었으나 지금은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난마처럼 얽힌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의 기류는 장마전선만큼이나 불안정하고 변화무쌍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처럼 남북이 군사적 대척점을 이룬 고성은 또 한편으로는 동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곳곳에 해수욕장과 휴양지가 많아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곳에 머물면서 둘러본 곳 가운데 인상깊은 장소는 화진포 일대 별장들이다. 송림숲 사이로 호수와 바다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이곳에는 일찍이 일제강점기에 서양선교사들이 지은 별장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몇몇 별장은 해방 후 이승만대통령 별장, 이기붕 별장, 김일성 별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역사적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승만 별장 위쪽 기념관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생애는 물론 독립운동과 정치활동 기록물을 생생하게 전시해놓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수도권집중-지방공동화 실감

 

그렇게 23일간 강원도 고성 휴가일정을 마치고, 6시간 가량 고속도로를 따라 광주로 달려가는 동안 육안으로 지방소멸과 지역격차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다. 경기도 여주, 이천을 지나 대전에 이르기까지 고속도로 주변은 빽빽한 빌딩숲이 이어지고 트레일러와 대형화물차들을 쉴새 없이 만나게 된다. 그러나 대전을 지나면서부터는 순식간에 이 모든 것들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만다. 건물 대신 초록빛 들판이 한가하게 펼쳐지고 차량들도 승용차만 듬성듬성 다닌다. 바로 이 지점이 수도권 집중과 지방의 공동화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점이지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광주전남에서만 살다가 가끔씩 수도권을 다녀오면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은 해가 갈수록 사람도, 차도, 빌딩도 북적대는데 광주전남은 정반대로 헐거워지고 있으니 저절로 마음이 무겁게 가라 앉을 수 밖에 없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이동했지만, 이제는 지방에서 서울로 몰리는 이지향경(離地向京)’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방신문을 들여다보면 거의 매일 지방소멸 기사가 빠지지 않고 실리고 있다. 최근 기사 가운데 전남의 경우 출생아보다 사망자 수가 4배에 달한다는 통계가 그 위험성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영호남 지역간 경제적 차이도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안이다.

지방소멸과 지역격차 해소 문제는 통일문제 못지않게 시급한 발등의 불이다. 지역 스스로 특성에 맞는 산업을 육성하고 지역발전 전략을 마련해야 할 일이지만, 반도체 학과 신설과 반도체 특화단지 등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부터 지방에 우선 배정해서 급한 불부터 끄는 결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