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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9)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9)

 

우리는 7시간의 긴 기차여행을 마치고 파리 동역에서 내렸다. 파리는 중앙역이 없고 대신에 여러 방면으로 역이 분산돼 있다. 역 광장을 나와 파리 시내 그녀가 사는 곳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지하철 입구에서 10개 묶음으로 승차권을 파는 사람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승차권을 사기 위해서는 자동판매기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묶음으로 사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판매하는 사람은 할인된 금액만큼 차익이 생겨서 이득이 되는 것이다.

묶음 승차권을 파는 사람들은 대체로 불법 이주자들이 많아요라고 그녀가 귀뜸해주었다.

나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그 사람으로부터 승차권을 구입했다.

파리의 지하철은 개통된 지 100년도 훨씬 넘기 때문에 갱웨이(gangway)가 마치 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쥐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벽면 곳곳에 타일이 벗겨져 있고 뜻을 알 수 없는 그라피테(낙서)가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이들 낙서들은 마약 거래자들의 암호이거나 반정부 구호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벽면에는 젊은 미모의 모델이 맵시를 자랑하는 화장품 광고판이 화사하게 조명을 밝히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13구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 했다. 파리의 지하철은 여러 종류로 쇠바퀴가 아니라 고무타이어로 굴러가는 노선도 있다. 고무바퀴 열차가 지나갈 때는 마치 펑크난 타이어가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그녀 집 부근 어느 역에서 내렸다. 그녀의 집은 기찻길이 지나는 공동묘지 옆에 있었다. 그것을 의식했던지 그녀는 공동묘지 옆에 살면 나중에 잘 산다는 속설이 있어요라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