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작노트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1)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1)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나는 잠시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1년 여름이었고 당시 소르본대학에서 유학중이었다.

나는 그때 파리에 출장을 왔다가 통역을 담당한 그녀를 알게 되었다.

첫 인상은 앳된 얼굴에 눈이 커서 청순미가 돋보였다. 특히 짧게 자른 단발머리에 단정한 입술이 차분하고 신중하게 보였다.

그녀는 시테섬 건너 언덕빼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머물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 출장 기간 동안 그녀의 집을 드나들었는데, 한적한 그 언덕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언제나 노트르담성당의 첨탑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름이어서 백야 현상으로 인해 밤 10시가 되어도 대낮처럼 환한 거리는 몽환적이었다.

언덕길 중간쯤에 우체국이 있었는데 때때로 나는 그곳에 들러서 부모님께 우편엽서를 써서 부치곤 했다.

일이 끝나면 우리는 파리 시내로 나가서 다른 한국 유학생들과 합세해 거리를 쏘다녔다.

그중 마레지구에 자주 갔었다. 마레지구는 좀 독특한 곳이다. 파리시청에서 가까우면서도 유태인이 모여 사는 동네로 동성애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래서 밤이면 더욱 흥분이 일렁이고 거리는 짙은 분홍빛으로 변한다.

우리는 마레지구 노천카페에서 젊은 파리지엥과 한국유학생들과 만나서 예술과 문화에 대해서 뜨거운 담론을 벌이곤 했다.

그 때의 느낌이 강렬해서 귀국해서 시 한편을 썼었다.

 

-마레지구 노천카페에서-

파리 한복판 마레지구 골목길/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잔 속에/파리의 가을이 프리마처럼 번져간다/갈색커피의 유혹에 감겨드는 프리마의 하얀 살결/커피향보다 진한 샤넬향수가 코 끝에 스멀거린다/수많은 인종들의 인파 속에 뒤섞인 언어들이/저마다의 철자법으로 매듭지어진다/한 모금 가을이 노을처럼 몸 안에 고독으로 내려앉는다/아듀, 떠남의 시간은 스쳐 지나가는 기차의 기적소리처럼/ 잠시 귓전에 울리나 오래도록 추억으로 붙박힌다/가을날 사랑은 이토록 짧게 저물고/마로니에 낙엽지는 파리 동역에서 막차가 떠난다/세느강을 흘러가는 추억들이여, 가을날의 방황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