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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돌아갈 시간

돌아갈 시간

 

청소년 여러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전파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이 목소리는, 우리 세대 10대 시절의 빗살무늬 자화상이다

 

시내를 떠돌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어둑해지면

 

길거리 점포 불빛들이 하나, 둘 꺼지고

 

도로의 차들도 듬성 듬성 줄어들어

 

도시는 조금씩 밀물이 차오른다

 

슬픔보다 더 아득한 우물 깊이에서

 

문들이 닫히는 소리

 

움직이는 그림자도 더 이상 출렁거리지 않을 때,

 

10시 시보와 함께 들려오는 여자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는

 

우물 저 바닥에서 길어 올린 절망처럼

 

내 마음을 철렁 튀어 오르게 했다

 

그리고 낮 동안 걸어왔던 길을 물끄러미 돌아보며

 

그 길을 왜 그렇게 빨리 걸어야 했는지,

 

가출소년처럼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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