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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겨울이 오기 전 동토를 떠나리라

 

한민족의 숨결이 흐르는 바이칼호의 아침을 맞으러
겨울이 오기 전 동토를 떠나리라
이 비좁은 방에서 무릎을 굽혔던 책상에서 일어나
등뒤의 창(窓)을 향하리라
26년 써온 일기를 꺼내 묵은 활자의 주술을 풀고
비로소 누군가에게 편지 한통을 보내리라
그 편지가 수신인에게 닿기 전
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로 가는 기차를 탈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걸어온 길 위에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자작나무숲들이 전설처럼 부옇게 누워있다
강이란 강은 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흐르는 걸까
산기슭을 흘러내린 물이 내를 이루고 장차 바다로 가는가
아니다, 아니다, 그 건 정녕 이름없는 넋들의 행렬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물안개 너머로 그대의 눈부신 얼굴이 솟아오르는가
어머니의 오랜 기도가 무덤가를 지나 여기에 광활한 눈물로 번지는가
생명이란 어느 한 순간 저무는 그리움이 아니다
점지해진 시간이 오면 낯선 길 하나 열리고
그 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숨죽이며 흐르는 것이다 흐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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