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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물은 그리움을 향해 몸을 누인다

강물은 그리움을 향해 몸을 누인다
미디어사업국장

강물도 탯자리가 있다 화해와 용서의 물길을 열자


입력날짜 : 2013. 12.24. 00:00

어느 덧 계사년 한해도 꼬리만 남겨두고 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감회가 가슴속에 저절로 솟구치는 때이기도 하다. 한 해가 저물고 또 다른 한 해가 잉태되는 점이지대의 풍경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노출된다.

그 중 하나가 신문지상에 실리는 영산강의 낙조이다. 남도 삼백리를 굽이굽이 흘러온 강물이 목포 하구언에 이르면 몸집을 불릴대로 불려 넉넉한 자태로 바다와 마주한다. 일 년의 긴 여정을 한 줄기 강물의 흐름에 비유하는 세밑의 사진 한 컷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강은 인류의 삶과 오랜 시간 궤를 같이 해왔다. 원시인들이 주로 생활한 터전도 강변이다. 강은 물을 구할 수 있고 물고기를 잡아 허기를 달랠 수 있어 인간에게 최적의 생존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강 주변지역에 역사유물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필자가 문화부기자 시절 취재한 문화재 발굴 현장 중 기억에 남는 곳도 역시 강 주변이다.

그 중 하나는 나주 다시면 복암리 고분이다. 영산강의 지류를 낀 구릉지대인 이곳은 청동기시대 대표적 묘제인 옹관묘 여러 기가 한데 밀집해 있는 형태로 발견돼 ‘아파트형 고분’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옹관묘와 철기시대 묘제인 석곽분이 혼합된 무덤(석곽옹관)에서 금동신발이 발견돼 강력한 세력자의 존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귀중한 발굴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원삼국 시대 백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가운데 영산강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독자적인 세력권이 상당기간 존속했을 가능성을 제기해준 단서가 되었으며, 지금도 학계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또 하나는 순천시 황전면 죽내리 유적이다. 죽내리 유적은 순천-남원간 도로 확·포장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1993년 지표조사로 처음 발견되었으며, 그 후 1996년부터 1998년에 걸쳐 8개월 동안 조선대 조사단에 의해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섬진강의 한 지류인 황전천 유역을 둘러싼 소규모의 분지 속에 들어있는 형국이다.

현재 황전천에서 직선거리로 약 80m쯤 떨어져있는 이곳이 1만여년 전에는 강이 흘렀던 곳이라고 한다. 당시 조사단장인 이기길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옛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조사 결과 네 개의 구석기문화층과 청동기 및 삼국시대 문화층이 약 5m에 이르는 지층 속에 차례로 층위를 이루며 놓여있는 것이 밝혀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마지막 간빙기에 쌓인 강물퇴적층 위에 놓인 비탈퇴적층에 들어 있어, 약 12만 5천년전 이후의 자연환경 변화 속에 선인들의 발자취가 생생히 남아있는 셈이다.

1만년의 시간의 마력이 강줄기를 저만치 옮겨놓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강도 자신이 태어난 탯자리가 있고 자라난 고향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강줄기를 조금씩 조금씩 끌어당긴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지리학에서는 오랜 시간 여러 가지 자연현상이 겹쳐서 만들어진 결과물로 분석하겠지만, 문학에서는 그리움으로 풀이하고 있다. 어느 시인은 ‘그리움은 흐르는 강이다’고 노래했다. 이 은유적 표현을 뒤집어 보면 ‘흐르는 강은 그리움이다’ 로 치환된다.

강물이 쉼없이 제 몸을 부딪혀 이르고자 하는 그리움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들과 부대끼면서 닿고자 하는 어떤 이상향과 같은 곳은 아닐까. 우리는 올 한해도 각자의 꿈을 위해 분주히 달려왔으며 다양한 만남을 통해 희노애락의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리고 깊은 심연을 들여다 보면 그 물줄기가 향하는 곳은 인간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순환의 원리가 깃들어 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한번이라도 옷깃을 스쳐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자. 그 만남이 기쁨과 즐거운 순간이었다면 감사한 마음을, 분노와 슬픔이었다면 화해와 용서하는 마음을 전하자. 영산강의 낙조를 바라보며 강물이 바다를 향해 몸을 누이듯 우리도 서로에게 그리움으로 한발 더 다가가자. 그리고 보다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2014년 새 해를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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