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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푸른길에서 얻은 사유

푸른길에서 얻은 사유
생태숲길이 문화발전소로 변모 장소적 활력 넘치는 문화교차로


입력날짜 : 2014. 01.14. 00:00

최근 광주 남구 주월동에 ‘푸른길 도서관’이 문을 열면서 주말이면 이곳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이 생겼다. 집앞 푸른길을 따라 걸어서 20분이면 도서관에 도착하는데, 3층 종합자료실에 들어서면 각종 신간도서와 열람실이 마련돼 있어 마음의 양식을 쌓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개관한 지 한 달 조금 넘었지만 열람실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용자들로 북적거린다.

남광주역에서 효천역에 이르는 경전선 철길이 옮겨가면서 생겨난 푸른길이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는 공원으로서 기능뿐 아니라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발전소로 거듭나고 있다.

푸른길은 처음엔 평범한 숲길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만남의 광장’으로 뚜렷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푸른길 광장에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난장을 펼친다. 주최측이 마련한 간이무대에는 10대의 현란한 힙합춤이 관객의 함성을 자아내는가 하면, 아마추어 가수들의 감미로운 음색이 7080세대의 가슴을 파고 든다. 낙엽지는 가을날 시낭송이 운치를 더하고, 크리스마스 이브땐 교회성가대의 장엄한 합창이 한해의 끝자락을 물들인다.

개발시대에 도시의 후미진 공간이었던 이곳이 오늘날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경전선 이설 계획이 확정된 후 폐선부지 활용방안을 놓고 광주시·도시전문가와 환경단체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던 것. 시와 전문가들은 교통난 해소를 위해 도시철도 부지로 이용하자고 주장했고, 환경단체들은 도시의 쾌적성을 위해 녹도(푸른길)로 조성해야 한다고 팽팽히 맞섰다.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린 가운데 접점을 찾기 위한 주민투표가 이뤄져 결국 푸른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푸른길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소로서 부각될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시작점인 남광주역이 아시아문화전당과 가까워 연결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광주천과 양림동 근대문화지구, 백운광장, 진월동 주거밀집지역, 금당산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광주의 시공간을 집약적으로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광주의 도시발전 과정과 역사성을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어 풍부한 스토리텔링 소재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제 푸른길을 생태환경의 시각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 문화중심도시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시아문화전당과 7대 문화권에 포함된 현재의 계획은 범위적으로는 충분하나 내용적으로는 장소적 활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푸른길을 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해 장소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는 새로운 발상과 체계적인 접근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푸른길 도서관과 같은 실제 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문화채널을 연결시켜 푸른길이 문화의 중심 간선망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 놓인 석상과 탑을 옮겨 장소성을 강화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불교문화는 아시아의 가장 보편적인 문화코드이다. 도시팽창과 개발과정에서 설자리를 잃고 마아처럼 보호되고 있는 석상과 탑을 원형의 의미를 살려 재배치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 현재 광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서구적인 폴리와 대비되어 더욱 동양적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또한 백운광장 인근 터미널부지를 문화의 터미널로 또는 예술가들의 창조공간으로 만들어 세계 예술인의 교류장소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동구 구도심의 수많은 단독가옥을 보전해 아트 레지던시로 활용하는 구상을 시도해봄직하다.

파리가 세계의 문화도시로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에펠탑이나 퐁피두센터같은 화려한 건축물뿐 아니라 몽마르뜨 언덕처럼 가난한 화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골목길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갑오년은 ‘청마의 해’이다. 역사 속 청마의 해는 새로운 수레(제도)를 끌고 나타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한 때 철마가 달렸던 푸른길을 이제는 청마가 달릴 차례이다. 2014년 아시아문화전당이 완공되면 문화수도 광주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