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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방대학, 다시 깃발을 높이 들어라

지방대학, 다시 깃발을 높이 들어라


입력날짜 : 2013. 12.10. 00:00

미디어사업국장
입시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지방대학은 대목장의 뒤끝처럼 한산하다.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지원자들이 수도권 소재 대학으로 몰려든 탓이다. 대학서열화가 빚어낸 양극화 현상이 해마다 되풀이 되고 있다. 입시제도도 철저히 수도권 대학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졌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수시모집의 경우도 강자독식의 룰(rule)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입시풍토 속에 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서울소재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염원하며 이른바 ‘in서울’에 올인한다. 자신의 적성과 개성은 접어두고 일단 서울소재 대학에 가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지방대에 가는 걸 껄끄러운 일로 치부하는 것이다.

오늘날 수도권 집중현상은 대학이 촉매역할을 하면서 구조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하에서 경제력이 집중된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해야 취업이 용이하고, 그에 따라 젊은이들의 서울입성 행렬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수도권 집중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초고속열차의 등장과 세계화의 진행으로 인해 대도시의 흡인력은 갈수록 확대돼 왔다. 영국도 젊은이들이 런던으로 몰려들면서 주변 소도시는 물론이고 제2의 도시인 버밍엄까지 공동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 러시’ 현상이 바람직한 것인가. 이 명제에 대한 견해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적어도 국가적 관점에서 볼 때는 큰 손실이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지역의 괜찮은 대학을 놔두고 서울에 진학함으로써 지출되는 기회비용이 기대이익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선 수요자의 입장에서 보면 4년간 지출되는 학비와 생활비를 비교하면 최저 4배에서 많게는 6배가 높다. 출산율이 저하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도 자녀의 교육비 부담이 과도하기 때문이다.

인력활용 측면에서도 미스매치(miss match)를 유발해 인력수급을 왜곡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서울에는 대기업과 금융기관 등 양질의 일자리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배출되는 졸업생 수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반면 대다수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지방에 소재하고 있다. 오늘날 중소기업들이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알고 보면 지방에도 우수한 대학들이 적지 않다. 광주과기원은 1993년 서남권 과학인재 양성과 첨단단지 활성화를 목표로 설립돼 20년의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우뚝 섰다. 포항 한동대 역시 기독교 정신과 국제화 프로그램을 특성화의 기둥으로 삼아 전국의 인재를 끌어 모으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신화를 잉태한 미국 스탠퍼드대학 역시 샌프란시스코 인근 팔로알토(Palo alto)라는 작은 도시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지방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대학이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들이다.

지방대학은 그 지역의 발전을 견인하는 지식창출과 문화생성의 창조적 메카이다. 단순히 시장논리에 의해 존재가치를 재단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지방대학 육성에 보다 과감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지역도 살리고 국가도 부강해지는 선순환 정책을 펴야 한다.

이와 함께 지방대학도 외부환경만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역량을 갖추고 발전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수도권 대학과의 연구력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연구실과 실험실이 불야성을 이뤄야 한다. 필자는 8년 전 방문했던 뉴질랜드 웰링턴의 빅토리아 대학 밤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투숙한 호텔 건너편에 경영대학 건물이 한눈에 보였는데 상당수의 연구실이 밤 12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어서 다음날 대학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대부분의 교수들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시간까지 남아서 연구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고 설명했다.

대학이 상아탑의 경계를 허물고 지역 속으로 파고들어 새로운 추동력으로 작동할 시점이다. 80, 90년대 민주화를 이뤄낸 뜨거운 시대정신과 도전정신으로 다시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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