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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벚꽃과 ‘사꾸라’

 

벚꽃과 ‘사꾸라’
미디어사업국장

한국정치사 ‘사꾸라’의 불온함/ ‘변혁적 리더십’ 갖춘 지도자 뽑자


입력날짜 : 2014. 04.07. 19:02

세상이 온통 꽃 천지이다. 시멘트 벽으로 가로막힌 아파트에서 벗어나 지상으로 나오면 여기 저기 꽃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지난 주말 집 부근 푸른길공원을 산책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각양각색의 봄꽃들이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3월초부터 피기 시작한 개나리, 매화는 저물었지만, 순백의 미소가 아름다운 목련, 가지마다 만개한 벚꽃이 봄 축제의 절정을 알린다.

특히 옛 농촌진흥원 부지와 운천저수지 일대에는 벚꽃이 군락을 이루어 상춘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또 광주 시내 주요 도로변에도 벚나무들이 심어져 도심의 경관을 환하게 밝혀준다.

벚꽃은 한 때 일본의 국화인 ‘사꾸라’라 하여 천대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 왕벚으로부터 전파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일감정의 사슬에서 풀려나 꽃 그 자체로 완상(玩賞)되고 있다.

벚꽃 행렬 사이로 6·4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의 현수막이 고개를 내민다. 저마다 ‘내가 능력있는 참일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벚꽃 속에 나부끼는 선거 현수막을 보면서 문득 ‘사꾸라’의 불온한 연상이 떠올랐다.

‘사꾸라’는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 꽤 오랜 동안 회자된 단어이다. 군사정권 시절 선거 때마다 등장한 대표적인 ‘마타도어’(흑색선전)이었다. ‘사꾸라’는 일종의 은어로서 ‘회색분자’ 또는 ‘변절자’로 통용되었다. 야당의원으로 행세하며 실제로는 군사정권에 협력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독재정권의 철권통치가 횡행하던 당시에 야당 의원후보가 가장 효과적으로 표를 얻는 방법은 자신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민주투사로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야당 후보들은 서로 자기가 진짜 ‘민주투사’이고 상대방은 ‘사꾸라’로 내몰았다. 물론 후보 중에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왕사꾸라’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유권자의 정치의식이 미성숙하고 정보가 어두웠던 당시 ‘사꾸라’라는 단어는 강력한 낙인효과가 있어 공격을 당하는 입장에선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꾸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마타도어’는 계속되고 있다. 검투사의 대결과 같은 선거판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을 쓰러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출마자 입장에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마타도어’는 선거 판세를 뒤흔들기 때문에 매우 유혹적이다. 그러나 유권자 입장에서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유능한 지역의 일꾼을 낙선시키고 오히려 부도덕한 인물을 선출할 수 있으므로 잘 분별해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어떤 인물일까? 학자들은 리더십의 유형을 크게 거래적 리더십과 변혁적 리더십 두 가지로 나누고, 변혁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높은 성과를 이끌어 낸다고 주장한다. 거래적 리더십이란 목표에 도달하면 상을 주고 미달하면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조직을 이끄는 것을 말한다. 즉, 리더가 조직원을 목표달성의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조직원들은 목표에 도달하고자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하지만 주어진 보상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는다.

반면 변혁적 리더십은 조직원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솔선수범하고 소통하면서 개인의 잠재역량을 발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거래적 리더십에서는 조직원이 보상에 비례해서 행동하지만 변혁적 리더십은 리더에 대한 존중과 신뢰, 공감을 바탕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훨씬 높은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오늘날 ‘섬기는 리더십’이나 ‘창조적 리더십’, ‘전략적 리더십’, ‘셀프 리더십’ 등이 구성원의 높은 도덕성을 전제로 하는 리더십이다. 이 유형의 지도자는 지역사회 주민들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데 경우에 따라서 구성원이 지도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꽃이라 해서 다 향기로운 것은 아니다. 같은 꽃이라 해도 어떤 꽃은 벚꽃이 되고 어떤 꽃은 ‘사꾸라’가 된다. 더 나아가 꽃을 피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열매를 맺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성경에는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후보자가 과거에 어떤 행적을 보였느냐를 살펴 변별력의 준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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