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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월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오월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미디어사업국장

정의로운 세상은 아직도 미완

입력날짜 : 2014. 05.12. 20:30

34년 전 금남로 거리를 피로 물들였던 오월 그날이 다시금 다가온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아득한 시간이건만 그날의 전율과 공포는 여전히 살아남은 우리의 심장을 짓누른다. 자유와 민주의 목마름이 뜨겁게 분출된 오월 빛고을, 그리고 무등산은 푸른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지만 그날의 굳은 맹세는 아직도 미완이다.

항쟁의 거리에서 독재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청춘을 초개처럼 살라야했던 영령들의 간절한 염원은 지금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가? 인간다운 삶, 정의로운 세상을 갈구하며 스러져간 그 자리에 또 다시 오월이 일어나 오지만 그들이 꿈꾸던 새벽은 오지 않고 칠흑같은 어둠뿐이다.

매년 이맘 때면 생각나는 후배가 있다. 김종철, 80년 당시 만 17세. 그는 가난하고 형제많은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마치고 자개공으로 일해야 했다. 수줍음 많고 늘 얼굴에 웃음이 어린 그가 오월투사가 되어 도청 앞에서 대치하다가 계엄군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가 이 땅에서 살다간 17년의 세월은 내내 독재체제였다. 그리고 결국 그 체제의 폭력에 꽃다운 생을 마감했다. 세상을 제대로 알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 더구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장에 다녀야 했던 그가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 그리고 뜨거운 심장에서 솟구치는 정의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광주시민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을 만큼 극한의 절망감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 죽음을 넘어 자신과 공동체 터전을 지키고자 결의한 것이다.

그러한 마음은 특히 시장 아주머니들의 진한 모성애로 피어났다. 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은 진압군들에게 쫓기다 인근 대인시장으로 달아났다. 시장은 미로같은 좁은 통로에다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려 도망치기에는 제격이었다.

시장상인들은 쫓겨온 대학생들을 숨겨주고 이들을 잡으러온 군인들에게 거칠게 항의하며 부모처럼 감싸주었다. 그리고 사태가 확대되자 장사도 포기한 채 주먹밥을 만들어 함께 거리에 나섰다.

이처럼 온 시민이 한 덩어리가 돼 광주를 지켜냈고 마침내 민주성지가 되었다.

80년 오월 광주에서 발현된 공동체 정신은 한민족이 5천년 역사의 숱한 외침(外侵)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과 단결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오월 광주는 한민족의 유구한 애민애족정신을 현대사에 뚜렷하게 각성시킨 뜻 깊은 사건이다.

이러한 점에서 광주정신은 프랑스 혁명이 발원시킨 자유, 평등, 박애에 비유되는 인본주의의 표상이며 한국 사회 전반에 이를 확산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광주정신은 정치적 프레임의 포로가 되어 그 순수한 의의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왜곡되고 훼손되는 수난을 당하고 있다.

한 나라의 장래 비전은 국민정신으로부터 기원한다. 헌법 전문 맨 첫머리에 건국이념을 명시하는 것도 그것이 지극히 명백한 순리이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도 근본원인을 분석해 보면 인간존중의 가치보다는 금전을 매개로 하는 부조리한 권력의 먹이사슬이 수 백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까지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선박직이 서둘러 탈출했는가 하면 촌각을 다투어 구조활동에 나서야 했을 해경의 늑장대처, 정부대책본부의 우왕좌왕, 진도관제센터의 무사안일, 언론오보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된 것이 없다.

외신들은 이번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사건발생 당시부터 현재까지 한달 가까이 유난히 크게 보도하고 있다. 특히 우리정부의 무능한 대처를 국내 언론보다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그만큼 사안이 중대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살릴 수도 있었을 수 백명의 목숨이 허망하게 사라져간 데 대한 안타까움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기관이 권력에 대한 수호에는 기민하게 작동하는 반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는 허술한 측면이 있다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너무나 큰 댓가를 치루며 인간존중에 대한 교훈을 일깨우고 있다.

정부기관을 비롯한 관련 종사자들은 옷깃을 여미고 진정한 참회와 더불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월정신이고 한민족의 홍익인간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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