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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실의 순간’을 만드는 사람들

‘진실의 순간’을 만드는 사람들

고령화사회 늘어나는 요양병원

환자위해 궂은 일 도맡아 하는 천사들


입력날짜 : 2014. 05.26. 19:30

숨가쁘게 소용돌이치는 도시의 일상 한 켠에 느린 시간이 흐르는 고요한 섬이 있다. 고령화 사회가 빚어낸 실버들의 안식처, 요양병원이 그곳이다. 창 너머엔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지만, 내부에는 인생의 황혼녘을 바라보는 관조와 무언의 쓸쓸함이 가득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최근 몇 년 새 광주시내 곳곳에 요양병원이 눈에 띄게 많이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축 건물뿐 아니라 기존 모텔이나 예식장, 기숙사 등 활용도가 낮은 건물들이 리모델링을 거쳐 요양병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 만큼 노인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맞춤형 수용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명(남은 생존기간)이 길어지고 노인환자에 대한 의료복지가 보편화되면서 요양병원은 슈퍼마켓이나 학교처럼 친숙한 생활공간으로 우리 곁에 와 있다.

개인적인 일로 요양병원에 자주 방문하면서 그곳에서 환자들과 더불어 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들이 그들이다. 하루 3 교대로 근무하는 이들은 24시간 환자 곁에서 치료를 돕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특히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중증환자들은 한 밤중에도 여러 가지 수발이 필요하다.

가족도 꺼려하는 일을 기꺼이 해내는 이들을 보면 ‘천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최근 가족 중에서 급성맹장염이 발병해 대학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한 적이 있다. 한밤중 수술이 끝나 병실로 옮겼으나 마취가 덜 풀린 상태라 계속 깨어있도록 말을 시키고 호흡을 깊게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치의가 당부했다.

그리고 환자가 빨리 회복하려면 가족이 곁에서 간병하고 자주 운동을 시켜야 한다고 조언해 며칠 밤을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수술을 받고 난 후 거동도 못하고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인 환자의 경우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다. 한밤중에 흥건히 젖어 환자복과 시트를 갈아야 하는 여러 차례 반복되지만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듯 자연스럽고 따뜻한 손길로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면 고마운 마음이 저절로 든다.

간병인뿐 아니라 간호사들의 노고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나이트(심야) 근무자들은 아침 8시까지 거의 잠을 자지 않은 채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조치를 한다. 한번은 환자복을 갈아입히면서 주머니에 든 휴대폰과 현금을 꺼내지 않은 채 한꺼번에 수거함에 넣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문득 그 사실을 알고 세탁물 수거함을 살펴보니 이미 세탁실로 옮겨진 후였다.

담당 간호사에게 부탁해 세탁기에 넣지 말도록 요청한 후 휴대폰과 현금을 찾아보기로 했다. 막상 세탁실에 내려가 보니 수거된 세탁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일일이 뒤져서 찾기란 불가능해보였다. 수거하는 직원에게 연락해 해당층에서 가져온 것을 알려달라고 해 간호사가 직접 몇 개를 풀어 헤친 끝에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병실에서는 크고 작은 해프닝이 벌어진다.

병원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환자 및 보호자와 직원간 의사소통이 혼선을 겪기 일쑤이다. 접수와 진료의 복잡한 절차와 미로같은 동선, 긴 대기시간 등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는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기운이 빠지게 된다.

그러나 긴박한 순간에 수많은 환자를 응대해야 하는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이해된다.

간호사와 간병인을 포함한 의료진도 감정노동자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본연의 감정을 억누르고 상황에 맞게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이들에겐 정신적 피로감이 클 것이다.

병원은 대표적인 서비스산업이다. 서비스산업의 특징은 고객과의 접점에서 가치창출이 이뤄진다. 그리고 고객과 종사자와 교감을 통해 서비스 만족이 결정되는데, 이 결정적 순간을 ‘진실의 순간’(moments of truth)이라 한다. 환자 곁에서 가족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의료인들이야 말로 ‘진실의 순간’을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시나브로 저물어가는 시간들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현대사회 노인들의 처지는 어쩌면 서글픈 일이다. 마찬가지로 가족들도 생업 때문에 의료기관에 부모를 의탁하는 현실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수고로움을 다하는 손길을 만날 때 가족들은 작은 위로가 된다. 초고속으로 달려오는 ‘고령화열차’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가 지금 우리사회에 큰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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