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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의 풍경

매실을 따며

 

 

 

 

매실을 따며

 

아버지가 별나라로 가신 지 보름이 지났다.

아직 아버지의 부재가 실감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일상 곳곳에 남기고 가신 흔적은 많은데 따뜻한 체취를 느낄 수 없는 막막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언젠가는 마지막 날이 올 줄 알면서도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탓일까.....

생전에 사셨던 아파트 방에 남겨진 유품들을 살펴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배어있는 사진첩, 그리고 메모들.....

생전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한스럽다.

이제는 그 흔적들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귀기울여 들을 수 밖에 없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유택을 찾았다.

아버지가 생전에 일궈놓으신 보금자리이다.

산중 깊숙한 곳에 자리한 유택은 23년 전 지관이 명당이라며 점지한 곳이다.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로 앞에는 꽤나 큰 저수지가 호수처럼 잔잔하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에 황계포란 지형이라 할만하다.

22년전 어머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먼저 묻히게 되었고, 이후 수십년간 아버지는 거의 매일 이곳에서 텃밭을 일구듯 묘지를 정성스럽게 가꾸셨다.

그러면서 주변 빈터에 감나무와 매실 몇그루를 심어놓으셨다.

나는 그동안 수없이 이곳을 찾았지만 매실나무가 있는지, 언제 열매가 열리는 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아버지를 모시면서 매실나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와 매실을 따면서 새삼 아버지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생전에는 왜 그렇게 산소에 돈을 들이는지 불만이 많았다. 제사도 성대하게 지내고 800평 잔디를 관리하는데 비용이 상당하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간다. 자식들이 편하게 찾아와 부모의 묘소를 돌보고, 과일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수확해 맛보도록 배려한 것이리라.

아내가 분주하게 매실을 따는데 나는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이곳을 자주 찾아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