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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05~2010)

'물가고삐' 단단히 잡아라 

'물가고삐' 단단히 잡아라 


 

입력날짜 : 2008. 03.25. 00:00

 박준수 경제부장
  
 옛말 그대로 봄같지 않은 봄(春來不似春)이다. 춘삼월 끝자락에 불어오는 바람이 한결 부드럽고 감미롭지만 서민들의 일상은 여전히 한 겨울 잔설이 녹아들지 않고 있다. '경제대통령'을 브랜드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꼬박 한달이 되었지만 잘풀릴 것으로 기대했던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설상가상 환율까지 큰폭으로 상승하면서 서민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연 3.6% 올라 한은의 물가관리 목표(3.0±0.5%)의 상한선을 넘어섰다. 체감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는 4.6% 급등했다. 특히 소비자물가 동향을 예고해주는 2월 수입물가는 22.2% 상승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0월(25.6%) 이후 9년 4개월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물가가 오르면 소득이 적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은 피해를 입으며 체감경기가 악화된다.
 실제로 대다수 생필품값이 원자재가격 인상을 이유로 알게 모르게 무더기로 올랐다. 원유가 인상에 따른 기름값 상승은 물론이고 자장면, 라면, 비스켓 등 밀가루제품 인상러시에 이어 대학등록금, 학원비 등 교육비까지 물가인상 '쓰나미'가 서민생활을 옥죄고 있다. 이에따라 서민들은 한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외식을 자제하고 필요한 물건도 가급적 싼것을 골라쓰는 '자린고비'정신이 되살아면서 쌀소비가 늘어나고 천원샵 매출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국민소득이 마침내 2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IMF때 유행처럼 번졌던 '아나바다'운동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반면, 상류층의 소비는 이같은 경제한파에도 끄덕없이 백화점 명품매장의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달 롯데백화점 광주점 명품매출은 50% 급등했으며 광주신세계도 24.8%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우기 지난달 롯데백화점 광주점에서는 1천400만원짜리 AEW36모델의 불가리 시계가 팔렸고, 신세계광주점은 롤렉스 콤비 남성용 930만원, 400만원 상당의 루이비통 가방 등 명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러다간 지난 참여정부의 최대 약점인 경제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물론 정부와 물가관리당국도 이러한 서민경제의 위기상황을 직시하고 발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어 안도감을 주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장·차관 국정워크숍에서 '경제위기론'을 설파한데 이어 50개 생활필수품에 대한 특별관리를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물가당국은 쌀과 돼지고기, 밀가루, 배추, 무, 마늘, 달걀, 우유, 라면 등과 함께 학원비까지 소득계층 40% 이하의 소비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품목들을 선정해 집중관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또한 곡물, 농업용 원자재, 석유제품 등 82개 품목에 대한 할당관세를 조기에 인하키로 했다.
 광주시도 오늘(25일) 산하 5개 자치구 등 20여개 유관 기관이 참여하는 '지방물가대책 실무위원회'를 열고 물가 안정 세부 대책을 협의하기로 했다.
 시는 우선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개인서비스 48가지와 생활필수품 78개에 대한 담당관을 지정, 이들 품목의 수급 상황과 가격 동향을 파악해 조기 대응을 꾀할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경제 악화나 물가 불안은 국제유가 및 원자재가 폭등, 국제 금융시장 불안 등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대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부도 물가관리 품목에 대해 가격통제 등 강제적인 가격인하보다는 수급조절을 통해 적정가격을 유도한다는 방침이어서 얼마만큼 효과를 낼 지 미지수다. 그래서 정부의 확고한 물가안정 의지천명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물가의 고삐를 다시 틀어쥘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정부가 이번 물가비상 사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경제대통령' 브랜드를 검증받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4월 총선에도 민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경제 구원투수'의 맹활약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