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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05~2010)

'길거리 경제지수' 세밀하게 살펴야

'길거리 경제지수' 세밀하게 살펴야


 

입력날짜 : 2008. 07.22. 00:00

 박준수 경제부장
 

 요사이 며칠째 열대야 때문에 잠못드는 밤이 계속되고 있지만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집안에서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마저 돌리기가 겁난다. 지난해 이맘때 다소 넓은 10년된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관리비가 늘어난 것도 선풍기를 멀리하게 된 이유다. 또한 9층이라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대류현상으로 인해 선풍기를 켜지않고도 자연바람이 불어와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
 그런데 아파트단지가 도로변에 인접한 지라 창문을 열어놓으면 상인들의 확성기 소리가 귀전을 때린다.
 요즘 우리동네 아파트주변에 노점상과 트럭행상이 부쩍 늘어난 것을 쉽게 발견한다. 2차선 좁은 이면도로가 마치 재래시장으로 변한듯 좌판들이 즐비하다. 그중 언젠가부터 아파트입구 담밑에 좌판을 펼쳐놓고 수박과 참외를 파는 부자(父子)가 눈길을 끈다. 아버지는 50대초반, 아들은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데 왼종일 뙈약볕에 그을리다가 밤 11시가 돼서야 귀가하는 모습을 보곤한다.
 20대와 50대의 남자라면 어느 직장에선가 한창 일할 나이이다. 물론 노점상도 어엿한 직업이라 말할 수 있지만, 불가피하게 거리에 좌판을 펼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는 듯했다.
 우리가 뉴스로만 접하는 중산층 붕괴, 청년실업 대란을 '통계지수'가 아닌 '길거리 지수'로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요즘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10년동안 통계수치에 둔감했다. 비교적 국내외 경제가 안정기조를 유지해온 터라 실업률이나 물가 등 경제관련 지수에 지금처럼 예민하게 반응하진 않았다.
 그러나 초고유가에 세계경제가 내리막길로 치닫는 요즘, 각종 경제통계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환란이후 최악'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쏟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6월중 수출입 물가 동향'에 따르면 수입물가 총지수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49.0% 올라 지난 98년 3월(49.0%) 이후 10년 3개월만에 최고의 상승폭을 보였다. 특히 원자재는 92.5%나 뛰어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8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률은 올들어 1월 48.7%, 2월 49.4%, 3월 56.4%, 4월 58.5%, 5월 83.6% 등으로 계속 뛰었다.
 이로인해 먹고, 입고, 타는 각종 생필품과 공공요금이 안오른 게 없다. 연초 밀가루 수입가격 급등으로 과자류, 라면 등 서민용 먹거리가 하나, 둘 오르기 시작하더니 식용유, 달걀, 마요네즈, 녹차 등 생필품가격이 올들어 10% 전후로 인상됐다. 여름철 성수기를 맞은 맥주도 이미 지난주부터 5%이상 올랐고, 원유납품 가격 인상으로 8월1일부터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가격이 15-20% 정도 오를 전망이다.
 뿐만아니라 정부가 최대한 인상을 자제하고 있는 공공요금도 들썩이고 있다. 정부는 도시가스 도매요금을 오는 8월부터 3개월에 걸쳐 30-50%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산업용 전기요금을 8월중에 5%정도 올린다는 계획이다.
 게다가 주택담보대출 금리마저 사상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민은행 이번 주 3년 고정금리형 주택대출 금리를 연 7.68~9.18%로 고시했다. 이는 역대 국민은행의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가운데 최고치다. 이에따라 많은 가정이 이자 부담을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예·적금을 깨 빚부터 갚는 등 '자산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한계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최후의 선택으로 법원을 찾아가 파산신청을 하고 있다.
 고용여건 역시 갈수록 악화돼 광주지역 실업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6월 광주의 실업률은 전달보다 0.1% 포인트 오른 4.1%로 이는 전국 평균(3.1%)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며, 전국 16개 시·도 중 가장 높다.
 경기침체(고용감소)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점점 우리곁에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경기가 나쁠 때는 이래저래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진다. 그리고 길거리 노점상이 부쩍 늘어난다. 정부 당국은 통계 지표뒤에 가려져 있는 '길거리 지수'를 세심하게 살펴 민생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환율정책 실패에서 보듯이 단순히 경제이론만으로 시장과 경기상황을 판단해서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