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1>
이런 날엔 편지를 쓰지
그저 쓸쓸한 마음과 취하고 싶어
이미 젖은 추억 속으로
나는 걸어갔고
바람이 차가운 손을 잡아주었어
누군가 할 말을 숨기고 있을 때
세상은 꿈을 꾸지
담장 밑에서 한 여름을 피워낸 장미처럼
아파트 창마다 가을 하늘이 물들었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저 공간에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보곤
그녀의 젊은날 초상을 생각했어
<2>
삶이란 메마른 것
잠시 대지에 머물다 흙바람이 되어
정처없이 떠도는 것
누군가의 그늘 아래 서성대다가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 침묵하다가
이렇게 마음이 잠길 때
너의 젖은 몸이 그리워졌지
<3>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
저토록 푸른 하늘을 본적이 없거든
우울증이 심할 때면
네가 건네준 거울을 보지
거리를 거닐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울
순수한 너와 나의 마음이 합쳐져
물들어버린 저 환희
숨막혔던 시간과의 조우
생명의 자리에서 정지한 붉은 장미,
여기 가을이 오고 있군요
대문 우편함에 빗물에 번진
오래된 이름,
가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