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물
박 준 수 부국장 겸 정경부장
입력날짜 : 2010. 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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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정치역정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죄다 겪으며 호남정치의 거목으로 우뚝 선 그가 대중앞에서 흐느꼈다.
사나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법. 그것이 동서고금의 오랜 미덕인데 그가 가슴밑바닥에서 울컥 북받치는 설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회한의 응어리를 토해내고야 말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의 이날 눈물은 U대회 유치과정을 설명하면서 절박하고 피말렸던 당시를 회고하면서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불출마 선언을 한지 나흘만에 일어난 상황이어서 그의 눈물은 또 다른 감정의 편린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지역 정치판의 중심에 자리해왔다. 물론 거기에는 DJ의 후광이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울러 특유의 정치감각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선굵은 인간적인 풍모가 더해져 오늘날 호남의 간판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됐다.
그는 어쩌면 뚝심하나로 오늘의 성취를 만들어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섬에서 태어나 맨주먹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온갖 풍상을 헤치며 국회의원 3선과 시장 재선의 꿈을 이룬 그다.
그의 정치 캐리어는 아무나 쉽게 이룰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선거에서 많은 구상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그리고 뭔가 히든카드를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아름다운 마무리를 천명했다.
정치인생의 중대한 ‘도박’을 벌인 셈이다. 그가 장차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그의 이번 불출마선언이 정치인생의 마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무튼 그의 부재로 이번 지방선거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DJ시대의 긴 그림자가 저물고 新정치세력의 출현이 예고되고 있다. 세대교체라고 해도 무방할 것같다.
이러한 변화의 기류는 이미 오래전 민심의 저변에서 부풀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뚜렷한 형태로 감지되고 있다. 암묵적인 기호학적 단계를 넘어 명시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지형의 지각변동에 기대어 벌써 선거전에 뛰어든 신생 정당만도 몇 개인가. 친노인사들의 국민참여당에 이어 친 DJ인사들의 평민당까지 백가쟁명의 다자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제는 누가 그 문을 열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그래서 시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어느 때보다 후보들의 선택에 신중함이 요구된다. 예전의 묻지마식 투표는 선진정치 일번지이자 민주성지 광주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당원들은 경선과정에서 후보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반시민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長江의 유장한 물굽이도 애초엔 한잔의 찻물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의 현명한 판단과 숙고가 모여 민주주의라는 큰 바다를 이룬다.
후보들 역시 전환기에 새로운 리더십으로 유권자에게 다가서야 한다. 예전엔 당 간판만 좋으면 ‘따놓은 당상’처럼 크게 힘들이지 않고 감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등식은 유효하지 않다. 유권자의 선택기준이 까다로워져 브랜드만 보고 선뜻 손이 가지는 않는다. 정치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을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인식·이론·관습·사고·관념·가치관 등이 결합된 총체적인 틀 또는 개념의 집합체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한국 지방정치에 적용하면 그동안 지역주의와 보스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정책과 인물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간파한 몇몇 기초단체장들은 정당간판을 과감히 버리고 무소속으로 나서 정치적 부활을 꾀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정치판은 더욱 복잡하고 난해한 함수로 얽혀져 상황전망을 예단하기 어렵게 됐다. 반면, 유권자의 선택폭은 대폭 넓어졌으며 선거를 지켜보는 관전의 재미도 한층 흥미로울 것같다.
아직 꽃샘추위가 수그러들지 않는 지금, 그의 눈물은 새봄을 재촉하는 낙숫물처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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