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그리고 광주
박 준 수 부국장 겸 정경부장
입력날짜 : 2010. 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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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시인 T.S. 엘리어트가 1차대전의 전화가 할퀴고간 황폐화된 현실을 황무지로 은유했듯이 4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기도 버거웠다.
그렇게 잔인한 4월을 뒤로 하고 5월이 우리 앞에 다가섰다. 5월 캘린더를 들여다보면 노동절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석가탄신일 등 가슴 따뜻한 날들이 연달아 있어 가장 ‘행복한 달’이다.
근로자들은 쉬는 날이 많아 좋고 아이들은 공부대신 야외로 나들이할 기회가 많아 마음이 들뜬다. 우리집 초등학교 4학년 막내아들도 어린이날에 놀이공원가자며 벌써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올해 5월은 정치·사회적으로 폭발력 있는 이슈들이 잠복해 있어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5·18 30주년과 노무현대통령 서거 1주기가 겹쳐있는데다 지방선거가 맞물려 있어 민심의 화학적 반응이 주목된다.
5월 광주는 80년 그날의 열기에 휩싸인다. 특히 올해는 5·18 30주년이어서 어느 해보다 추모열기가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금남로 옛 도청광장은 30년전 그날의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는 대동세상을 열 것이다. 세월은 흘렀어도 주먹밥을 나눠먹고 피를 뽑아 목숨을 살렸던 그날의 아름다운 공동체에 대한 향수는 마르지 않고 가슴속에 넘실대고 있다.
오월영령들의 숨결이 푸르게 걸쳐있는 망월동은 다시 국화꽃으로 뒤덮히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광주시가 시민의 날 기념식을 5월21일로 변경해 처음으로 오월행사 기간중에 시민축제로 치르기로 해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이와함께 5월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는다. 지난해 홀연히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생을 마감한 노 대통령의 충격적인 기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노풍의 진원지로서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광주가 떠안아야할 상처이기도 하다. 봉하마을로 이어지는 길고 긴 행렬은 다시 길을 메울 것이다.
광주의 5월은 그렇게 뒤숭숭하고 먹먹하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지만 그 저변에는 가슴 벅찬 환희가 깔려있다.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대동세상에 대한 확신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역사의 고비마다 정의와 자유로 표출되곤 했다.
5월은 또한 이번 6·2지방선거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여야가 경선을 마치고 본선을 치루는 한 복판이어서 5월의 민심기류는 정치지형을 뒤흔드는 진앙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이번 선거는 민주당과 텃밭민심의 상호 시금석이기도 하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광주의 정치적 구심력이 쇠퇴하고 민주당에 대한 애증이 극명하게 교차하는 시점에서 민심이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는 매우 시사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재 민주당은 아쉽게도 낙관적이지 못하다. 경선을 둘러싸고 계파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결과 광주시민의 자존심이 크게 훼손되었는가 하면 공정한 게임룰을 보여주지도 못했다는 평가이다. 더 나아가 30년 민주당 독식의 관성에 젖어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선거’가 되지 못하고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했다는 뼈아픈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따라 민주당에 대한 결속력이 급격히 이완되고 있으며 이에 편승한 친민주신당과 무소속후보들이 가지를 뻗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그동안 소원했던 한나라당이 중량급 인사들을 전략적으로 발탁해 세몰이에 나서고 있어 민주당에 대한 텃밭민심이 예사롭지 않다.
따라서 지금 민주당은 다시 신발끈을 바짝 조이지 않으면 어떤 복병을 만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오월정신의 진정성 있는 계승에 달려있다. 이런 점에서 오월 광주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실천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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