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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스페인 여행의 3가지 단상

스페인 여행의 3가지 단상
박준수 경영사업국장 겸 이사

#1.디플레이션 우려속 명암 #2.관광대국 콧대높은 위세 #3.플라멩고에 얽힌 이야기


입력날짜 : 2015. 02.09. 20:00

지난달 말 가족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에 자리한 이 나라는 투우, 축구, 플라멩고로 유명하며 최근 한국관광객들에게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나라로 꼽힌다. 현지 여행가이드에 따르면 작년 모 방송사가 이곳에서 촬영한 ‘꽃보다 할배’ 프로그램 방영 이후 크게 방문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매력적인 풍광과 역사문화 유적이 풍부한 때문이다. 피레네산맥을 경계로 서유럽과 다른 독특한 문화적 고유성을 가진데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끼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필자가 8박10일 일정으로 수도 마드리드를 비롯 그라나다, 바르셀로나 등 주요 도시를 둘러보면서 얻은 견문 가운데 3 가지를 소개한다.

스페인은 인구규모는 4천500만명으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면적으로는 한반도의 2.3배(남한의 6배), GNP(국민총산액)는 2배에 달한다. 산업구성은 농업과 건설업 비중이 높고 관광산업도 GNP의 10%를 차지해 관광대국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침체국면에 놓인 가운데 스페인도 예외없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유로존 평균실업률이 작년 12월 기준 11.4%인 반면 스페인은 23.7%로 프랑스 10.3%, 독일 4.8%보다 월등히 높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35.5%에 육박해 재난적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존 전역에 디플레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어 디플레 원인과 처방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디플레는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기업들의 수입이 축소하고 이로 인해 실업율 증가와 소득감소로 이어져 악순환을 초래한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점차 경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유로존 국가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채권을 사들이고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고 있다. 스페인이 유독 경제적으로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는 것은 노인인구가 많아 복지비용이 과다하게 지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7년 부터 과열된 건설경기의 거품이 꺼지면서 체감경기는 더욱 차갑다.

스페인은 이태리,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데다 일년 중 흐린 날이 거의 없이 태양빛이 가득해 천혜의 관광 조건을 갖추고 있다. 스페인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이 잉태한 건축유적이 풍부하고 천재적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성파밀리아 성당을 비롯, 미술가 고야, 피카소의 작품이 미술관을 채우고 있어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또한 유로화 가치가 5년전에 비해 20% 가량 하락한 것도 호재이다. 2010년 1유로당 1천500원이던 것이 2015년 2월 현재 1천2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한국, 중국 등 아시아지역 관광객 유치에 상당한 흡인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한국의 인지도는 꽤나 높은 편이다. 88서울올림픽과 2002한일월드컵, 그리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최근 한국관광객이 많이 찾으면서 호텔이나 식당, 기념품 가게 등 한국인과 접촉이 많은 곳에서는 간단한 한국말이 통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고자세이다. 영어가 거의 통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화장실 이용도 매우 불편하다. 관광지 입장도 까다로운 편이다. 가우디가 조성한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을 방문한 날,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자 작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깜박 잊고 호텔에 팁을 두고 오지 않으면 곧바로 가이드에게 전화가 올 정도로 에티켓을 요구한다.

스페인 여행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플라멩고 관람이다. 플라멩고는 집시들이 자신들만의 정서를 춤과 노래와 기타연주로 표현한 것이 오늘날 무대공연으로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다. 필자는 세빌의 한 공연장에서 플라멩고를 관람했다. 300석 정도의 극장안에는 절반 가량이 한국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6막으로 구성된 플라멩고는 남녀 무용수의 격렬한 스텝을 동반한 관능적인 춤, 가슴이 미어질듯 애절한 노래(칸테), 청아하면서도 애조띤 기타선율이 어우러져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관객을 몰입시켰다.

가이드가 전해준 플라멩고에 관한 일화가 인상깊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말 스페인을 방문한 길에 마드리드 한 공연장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플라멩고를 감상했다고 한다. 노대통령은 관람 후 “잘 보았습니다. 여한이 없습니다”는 말을 그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는 “여한이 없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는데 노 대통령 죽음 후 그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세계 책의 날 행사에 초대된 작가 신경숙씨도 ‘엄마를 부탁해’ 사인회를 마치고 마드리드에서 플라멩고를 감상했다고 한다. 그녀는 관람 후 “내가 스페인에 온 이유는 플라멩고 때문이다. 뜨거움 속에 같이 타오르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필자는 2시간 동안 호기심을 가지고 공연을 지켜보았으나 별다른 감흥은 일어나지 않고 노 대통령이 가이드에게 밝힌 “여한이 없다”는 말이 자꾸 어른거렸다.

“인생은 마치 여행과 같은 것이다. 곡마단처럼 아침이면 짐을 꾸려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되돌아 볼 수는 있으나 되돌아 갈 수 없는 게 인생이다.” 현지 가이드가 읊조린 말들이 여운처럼 뇌리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