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온 날의 풍경

장학사와 배

나의 유년시절

 

장학사와 배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초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학교에 장학사 선생님이 오신다고 학교가 떠들썩하였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학교에서 과일 전시회를 한다며 집이 과수원하는 학생은 손을 들라고 하셨다.

우리집이 감나무 과수원이었던 나는 손을 들었다. 나 말고도 한두명이 더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손든 학생은 청소시간에 청소하지말고 집에 가서 과일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들 학생에게는 급식빵을 특별히 챙겨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내가 선택되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으로 걸어서 시오리나 되는 길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께 선생님으로부터 전달받은 사항을 말씀드리니 지금은 감이 하나도 없으니 대신에 배를 몇 개 주시겠다며 대나무로 만든 선물용 과일바구니에 담아주셨다.

나는 배가 든 과일바구니를 들고 질척거리는 신작로를 걸어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과일바구니가 부실해 배가 질척거리는 흙탕길에 떨어져 흙이 묻고 말았다.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이 흙묻은 배를 다시 담아서 선생님께 전해드렸다. 선생님은 수고했다며 과일을 받았다.

나는 급식빵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이후 과일전시회를 한다는 얘기는 없고 조용히 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당시에 왜 과일을 가져오라고 했을까, 과일전시회가 정말 필요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곤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학사선생님께 뭔가 대접을 해야겠는데 돈은 없고 하다보니 이런 아이디어를 짜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가난하고 순수했던 시절의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