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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TV와 만남

[TV속 세상] 만남

만남
박준수 본사 기획실장


입력날짜 : 2016. 04.28. 20:16

세상살이는 만남의 연속이란 말이 있다. 인연도 만남을 시작으로 싹이 튼다.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에 따라 내일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기자라는 직업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30년 가까이 언론인으로 생활하면서 무수한 사람을 만나왔다. 등대지기부터 현직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종과 계층의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들의 삶과 희노애락을 들으며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다.

비슷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꽃과 나무의 모양이 저마다 다르듯 ‘따로 또 같이’ 가는 게 인생이다.

TV를 맡아 운영하면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신문은 인터뷰를 비교적 편의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꼭 만나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질문서를 보내 답변서를 보내오면 이를 정리해서 인터뷰 기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TV인터뷰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대담하는 장면이 영상으로 담기지 않으면 인터뷰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매체와 인터뷰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공식성을 띤다. 일상의 사적인 이야기를 듣고자 인터뷰를 하지는 않는다. 그 대상 인물이 뉴스의 가치를 지닐 때 인터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언론과의 만남은 사회적 만남이자 공식적 만남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20여년 전 필자가 문화부기자 시절에 겪은 부끄러운 에피소드이다. 문화관광부가 1996년을 ‘문학의 해’로 선포하자 각 신문들이 일제히 문학관련 특집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광주매일신문도 ‘작가의 고향’이란 타이틀로 우리지역 출신 유명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매주 고정적으로 나가는 기획물이라 작가의 대표작을 읽고 또 작가와 함께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나 생가를 찾아 취재하는 일정이 빠듯했다. 그래도 평소 문학세계를 동경했던 터라 직접 이름난 작가를 만나서 한나절을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즐거움이었다.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문인으로는 천승세, 차범석, 송기숙 등 쟁쟁한 작가들도 포함됐다.

이 가운데 한 분과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아가는 도중인데 차안에서 불쑥 작품과 관련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주인공의 행적에 대해 물어보는데 사실 작품을 읽지 않은 터라 정확한 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둘러댈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 작가분이 기자가 작품도 읽지 않고 취재를 한다면서 버럭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그리곤 기분 나빠서 취재에 응할 수 없으니 돌아가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무척 부끄럽고 당황한 적이 있었다.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한 끝에 겨우 취재를 마칠 수 있었지만 그분에 대한 미안함과 스스로의 자괴감 때문에 오래오래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후로는 누군가와 인터뷰를 할 때는 가급적 충분히 정보를 파악한 후 질문을 할려고 한다. 특히 문인의 경우 그 분의 작품을 읽거나 최소한 서평이라도 살펴본 후 대면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프로필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

특히 TV인터뷰에서는 질문 한 토막에서도 인터뷰 대상에 대한 몰입정도가 드러나기 때문에 보다 폭넓은 인물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 화요일 한국문단의 거장이자 남도를 대표하는 소설가 한승원 씨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을 큰 영광이자 기쁨으로 생각한다. 한 분야에서 오랜 내공을 쌓은 거장의 발언은 오래 오래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광주매일TV 시청자들의 가슴속에도 다향같은 여운을 전해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