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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13 총선 이후 호남정치

4·13 총선 이후 호남정치
박준수 기획실장 겸 이사


입력날짜 : 2016. 05.02. 18:49

4·13 총선이 끝난 지 20일이 지났지만 16년만에 여소야대를 만들어낸 민심의 해석을 놓고 정치평론가들은 물론 일반시민들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만큼 이번 선거가 상상을 초월한 대이변이었고, 숨죽이고 있던 민심의 폭발력이 얼마나 강한지 다시 한번 실감케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선거결과에 대한 중앙언론의 분석을 간추려보면 총론적으로 박근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론이 지배적인 가운데 각론 부분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실패, 야권분열로 인한 안이한 대응, 여론조사의 부정확성 등 선거과정의 변수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시각으로는 총론도 각론도 모두 현 정부와 여당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결집해 심판의 결기를 드러낸 것으로 판단된다.

장기 경기침체로 인해 서민의 뼛속까지 파고드는 가난의 무게를 집권층은 얼마나 헤아리고 있는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실업자로 전락하는 청년들의 미래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구조조정의 압박속에 서둘러 직장을 떠나는 베이비부머들의 불안감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노인인구에 대한 부양대책이 불확실한 가운데 유권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한 가지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정부·여당 실정 국민들의 심판



따라서 이번 선거결과를 주저리 주저리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명백한 본질을 놔두고 변죽을 울린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전통적인 보수성향 지역 상당수가 등을 돌렸고, 심지어 철옹성같던 TK(대구경북)도 변화바람이 불었으니 말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민심의 실체를 정확히 읽고 시름에 잠긴 국민의 마음을 추스르는데 지혜를 모으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제 눈을 돌려 호남정치 지형변화를 살펴보자. 여소야대 못지않게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난 곳이 광주·전남이다. ‘호남정치 복원’의 염원을 안고 탄생한 국민의당이 짧은 기간에 일약 호남의 새로운 맹주가 되리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다수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 전개된 야권 분열상을 걱정했을 것이다. “거대여당에 맞서 싸우려면 똘똘 뭉쳐서 젖먹던 힘까지 쏟아도 부족할 할 판에 각자도생이라니…”. 누가 보더라도 적전분열의 비극적 결말을 우려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정부 심판론이 토네이도처럼 일어나면서 야권으로 표가 쏠리게 돼 3당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호남지역민은 이번 선거에서 호남에 많은 빚을 지고도 부채의식이 전혀 없어 보이는 더불어민주당을 버리고 국민의당을 품에 안았다.

문재인 전 대표가 선거막판 광주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읍소했으나 단단히 화가 난 호남민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따라서 더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와 거리두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호남 지켜줄 지도자 누구인가



그렇다고 국민의당이 완전히 호남인의 신임을 얻었다고 말하기에는 시기상조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지를 이끌어냈다기보다는 더민주에 대한 실망감을 통해 반사이득을 챙긴 측면이 크다. 이번 선거에서 호남인의 또 하나의 바람은 세대교체 요구였다. 그러나 더민주에서 공천이 옹색해진 다선의원들이 대거 녹색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당선되는 바람에 기대치를 희석시켜버렸다는 게 지역민의 평가이다. 며칠전 택시를 탔더니 기사왈 “국민의당이 이렇게까지 호남을 싹쓸이 할 줄은 물랐어요. 좋아서 찍은 게 아닙니다. 더민주가 싫어서 찍은 거지…”

좋든 싫든 이제 호남은 국민의당에 의지해 지역현안을 해결해야 할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당적이 서로 다른 단체장과 지역구 의원과의 갈등과 마찰도 우려된다. 더민주 소속 국회의원의 협력으로 당선된 단체장은 새로 당선된 국민의당 의원과 여러 가지로 껄끄러운 관계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정파적 갈등요인이 지방정치에 표출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성숙한 협상력이 요구된다.

어찌됐든 호남은 3당 구도에서 호남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내년말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뭉친 호남은 여야를 넘나드는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DJ와 같은 걸출한 대선후보가 없는 상황이지만 과거와 같이 호남고립의 최악상황은 피할 수 있는 정치지형을 만들어냈다. 이제부터 호남의 지분을 잘 지켜줄 지도자가 누구인지 눈여겨 볼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