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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답없는 세상에서 시(詩) 쓰기

칼럼-대답없는 세상에서 시(詩) 쓰기

 

동남권 신공항 부지선정이 사실상 백지화된 가운데 그 불똥이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까지 번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당초 이달중에 발표 예정이었던 450억원짜리 국립한국문학관 추진 중단을 지난 6월 24일 전격 발표했다. 문광부는 “후보지 공모과정에서 지자체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불필요한 갈등과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중단 이유로 들었으나 ‘김해공항 확장’안이 발표된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그 배경이 석연치 않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오는 8월 시행을 앞둔 문학진흥법에 따라 국고 450억원을 들여 문학유산의 자료수집과 연구, 전시와 교육기능을 갖춘 문화공간으로, 2020년 들어설 예정이었다. 지난 5월 후보지를 공모한 결과 광주 동구와 광산구, 전남 장흥 등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24곳이 유치신청을 했다.

 

기대감만 부풀린 국립한국문학관

 

특히 전남 장흥의 경우 국내 유일의 문학관광기행 특구이자 장흥출신 소설가 한승원씨의 딸 한강씨가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Man Booker prize)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문학관 유치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린 터여서 아쉬움이 크다.
문학은 문화예술의 정수이자 유구한 생명력을 지닌 장르로서 인간의 휴머니티를 가장 심오하게 표현해내는 매개체이다. 따라서 그러한 결정체를 담아내는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정치적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문학관과 관련해 한때 급물살을 타던 광주문학관 건립계획이 추진과정에서 야기된 논란으로 인해 더 이상 진척을 보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경위야 어떻든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는 광주에 아직까지 번듯한 문학관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예향광주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광주는 현대문학의 텃밭이자 밑둥이다. 남도의 순수 서정을 노래한 ‘시문학파’의 주역 용아 박용철을 비롯 양림동 언덕에 머물면서 기독교 정신과 근대성을 천착한 김현승이 선구이다. 이어 6·25와 60년대 시대적 전환기에 한국문단을 빛낸 박봉우, 박성룡, 70년대 유신정권에 저항한 이성부, 조태일, 김남주, 양성우, 80년대 민주화를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한 김준태 등이 한국문단을 떠받쳐왔다.
특히 광주문학은 5·18을 기점으로 ‘광주정신’을 지향점으로 새로운 지층을 형성하게 된다. 유신독재와는 또 다른 시대적 암흑 속에서 처절하게 희망을 갈구했던 몸부림이 광주문학의 현장이다.
그러나 지금 광주문학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다.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배우도 관객도 없는 컴컴한, 그리고 삐걱거리는 광속처럼 으슥하다.  
혹자는 수많은 지역문인과 문집출판 발행 숫자를 가지고 말할 지 모른다. “광주는 시인들로 가득찬 도시”라고. 그러나 문학은 양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시대정신과 휴머니티를 얼마나 언어예술로 잘 직조해내느냐가 판단기준이다.

 

시인은 많지만 독자없는 시집들

 

문인협회 회장선거 때만 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시인이 아니라, 일년마다 보고서를 내듯 찍어내는 시집이 아니라 시대와 호흡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문학이 진정한 예술이다.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소박한 시 한 줄을 밤새워 쓰는 이름없는 시인이 더욱 절실하다. 그리고 그 작품의 옥석은 수준 높은 독자가 선별하게 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은 시집을 내놓을 때마다 지역문학의 공허함을 새삼 경험하게 된다. 우선 시집을 선보일 유통채널이 없어 대부분 지인들에게 재능기부 형식으로 선물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정성들여 사인까지 한 시집들이 휴지통에 버려져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세태를 두고 ‘대답없는 세상에서의 시’(Poetry in a world with no answers)라고 안타까워 한다.
그런데 수준 높은 독자가 저절로 잉태되는 것은 아니다. 판소리에서 귀명창이란 말이 있듯이 시 행에 스며있는 은유적 표현의 그윽한 향기를 맡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문학수업이 충실하게 이뤄져야 할 뿐 아니라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시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에 문학관이 서둘러 건립되어야 한다. 전시와 공연중심의 예술정책은 이제 재고되어야 한다. 또한 문인들의 생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유럽의 도시들은 그 지역출신 작가의 생가를 보존해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문화융성을 국정의 방향타로 삼은 현 정부에서, 그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는 광주에서 문화예술의 정수인 문학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적어도 광주에서만큼은 문학이 죽순처럼 우뚝 솟아나야 한다. 그래야 예향이고 문화수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