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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발산마을을 ‘예술인촌’으로 만들자

발산마을을 ‘예술인촌’으로 만들자
박준수 본사 기획실장 겸 이사


입력날짜 : 2016. 07.04. 20:06

광주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서구 발산마을이 문화향기를 발산하는 예술마을로 탈바꿈하고 있다.

비탈진 언덕에 들어앉은 낡은 슬라브집과 인적 드문 골목길, 공터에 손질된 텃밭이 색다른 풍경을 자아내는 오래된 동네. 요즘 흔한 커피숍이나 마트, 미용실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유행의 사각지대. 하지만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카메라와 노트를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빛바랜 시간의 흔적을 담느라 북적거린다.



싱가포르 작가의 기획전 인상깊어



첨단문명과 새로움으로부터 외진 이곳에 예술가들의 숨결이 깃들면서 이제는 문화향기를 뿜어내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공유공간 뽕뽕브릿지’(대표 신호윤)가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주말 ‘공유공간 뽕뽕브릿지’ 사무실을 취재차 방문했다. 광천터미널에서 양동시장으로 향하는 천변도로에서 초원파크를 지나 광천초교 후문 입구 골목에 들어서면 한 주택에 붙은 ‘뽕뽕브릿지’라는 빨간 간판이 눈에 띈다. 이곳은 지난 2014년 ‘뽕뽕브릿지’가 발산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10여년간 방치됐던 100평(330㎡) 규모 가구창고를 리모델링한 전시장이다.

나무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면 옛 서민주택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마당에는 재래식 화장실과 문간방이 있고, 본채는 방이 헐린 채 사방이 시멘트벽으로 하나의 공간을 이룬다.

이곳에서는 때마침 싱가포르 출신 작가 2명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주택 안에서 전시회가 열린다는 게 신기했다. 이들 작가는 ‘뽕뽕브릿지’가 운영하는 레시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코으왕화(53·Koh Nguang How)와 림쉔겐(36·Lim Shen Gen)이다.

전시제목은 ‘Archiving the archivist’(자료수집가를 수집하다)로 1980년대부터 싱가포르 1세대 예술가 작품활동을 아카이브했던 코으왕화가 수집한 자료를 카이스트(KAIST)에서 예술기술을 전공하고 있는 림쉔겐 작가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작품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메니저인 최윤미씨의 도움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코으왕화는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서 아카이비스트로 일했으며, 이때 싱가포르 예술인촌(TAV; The Artist Village)을 무대로 활동했던 탕다우(Tang Da Wu) 등 진보적인 작가들의 예술세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TAV는 도시 외곽의 빈민촌으로 가난한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각자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예술가들의 특구였다. 그러나 정부의 획일화된 도시계획과 상업주의에 밀려 그들의 터전은 상실되고 외딴섬 ‘달라우번’으로 밀려나야 했다. 하지만 그곳은 정글지대로 정상적인 예술활동이 불편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어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인근 국가로 떠돌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TAV’라는 그룹을 결성해 인터넷상에서 정보교류와 예술을 논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문화전당을 흥행시키는 해법 기대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역사의식과 사회인식이 강하게 묻어난다. 이번 전시작품들 중에도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과 현대문명의 비인간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특히 그는 2000년 광주비엔날레때 참여작가 탕다우(Tang Da Wu)의 조수로 자료수집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5·18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번 전시에서 주먹밥을 작품으로 선보였다.

그는 뽕뽕브릿지 인근 작업실에서 3개월간 머물면서 외로움을 견디며 꽤 의미있는 성과물을 잉태했다. 이는 발산마을이 가진 독특한 장소성이 그가 가진 예술적 감성과 공명을 일으켰기에 얻어진 결과이다.

그는 고층아파트숲으로 뒤덮힌 싱가포르와 달리 지붕이 있는 가옥들과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풍경이 따뜻하게 와닿는다고 말했다. 특히 개발이 더딘 발산마을이 한때 싱가포르 예술인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했던 TAV와 닮은 점이 많아 포근하게 느껴진다며 오래도록 남아있었으면 한다고 감회를 밝혔다.

발산마을은 아직 상업주의와 개발의 손길로부터 처녀성을 간직한 순수한 자연마을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모습을 최대한 보전해 ‘국제예술인촌’으로 만들어 코으왕화와 같은 작가들이 머물면서 아시아 문화예술 교류와 창작의 발신기지가 되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어쩌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흥행시키는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