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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도문예 르네상스’ 다시보기

‘남도문예 르네상스’ 다시보기
박준수 본사 기획실장 겸 이사


입력날짜 : 2016. 08.01. 19:30

자고나면 달라지는 세상에 물린 탓일까. 오래된 시간의 흔적들이 그리운 요즘이다. 감성을 마구 흔들어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노라면 새로운 것들에 대한 추격이 때론 버거울 때가 있다. 우정과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 모퉁이에 느림의 미학이 유유히 존재한다.



유구한 향토자원에 대한 재발견



최근 전남도가 묵은 것들을 되살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야심 찬 청사진을 내놓았다. 민선 6기 후반기 역점시책으로 발표한 ‘남도문예 르네상스’ 추진계획이 그것이다.

서화, 전통정원, 종가문화, 바둑, 고인돌 등 12개 비교우위 향토자원을 ‘웰빙과 힐링’이라는 시대조류에 맞춰 재조명해 지역발전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다. 예향 남도의 우수한 문화예술 유산을 복원시켜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동안 지역개발 방식은 전통적 가치를 희생시키면서 산업화 중심의 속도 높이기에 열중해 왔다. 이제 눈을 돌려 우리 지역 품안에 함초롬히 내재해 있는 묵은 것들의 숨결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남도문예 청사진에 담긴 비교우위 자원 12개는 오랜 세월을 거쳐 잉태된 남도인의 솜씨와 정신, 신명, 한이 스며있는 문화유산으로 전라도의 색채가 짙게 배어있다.

이 향토자원들을 현대적 기호에 맞게 재구성하고 다듬어서 명맥을 잇는 작업에 지역민이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최근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벌인 이세돌 9단의 천재적 재능을 선배들이 축적해 온 성과와 접목한다면 더욱 빛나는 유산이 될 것이다. 또한 2천년 동안 중국과 이어져온 문화예술교류 활동을 한 곳에 집대성해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황해교류역사관 건립 계획도 시의적절한 구상이다.

그러나 이들 사업을 톱아보면서 실행 과정에 대해 몇 가지 우려가 생긴다. 첫째는 전체 사업비 2천120억 원 가운데 81%가 도립미술관, 황해교류관 등 하드웨어 구축에 투입되도록 돼있어 ‘남도문예 르네상스’라는 취지와 맞는 지 의문이다. 사전을 보면 르네상스의 기원은 14-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운동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과 지식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느림의 미학’을 기조로 삼아야



한마디로 르네상스의 본질은 인문주의 운동이다. 하드웨어 구축보다는 남도의 침체된 고전문화를 현대적 문맥으로 재해석하고 부흥시키는데 방점을 둬야 한다는 생각이다.

둘째, 24개 사업 가운데 많은 부분이 현재 22개 시·군에서 진행되고 있어 중복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선사거석문화 체험 프로그램 개발이 대표적인 예로 화순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을 소재로 매년 10월 축제를 열고 다양한 선사시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셋째, 사업시기와 관련 전라도 정도 1천년을 맞이하는 오는 2018년에 예산의 47%가 집중 투입되도록 일정이 짜여져 있어 시기와 주제가 겹치게 된다. 또한 예산 기준 전체 사업진도의 60.6%를 민선 6기 임기 내에 진행하는 것으로 돼있어 조급하게 서두른 감이 있다.

‘남도문예 르네상스’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느림의 미학을 기조로 전개돼야 한다. 그리고 남도땅 구석구석 스며있는 전통 원형들을 건져 올려 스토리로 엮어내는 작업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자원·주제별 사업 전개와 더불어 장소·권역별 사업을 적절히 혼용하는 전개방식이 더욱 효과적이 아닐까 한다.

남도문예가 가장 찬란하게 꽃피운 지역 중 하나가 영산강을 끼고 있는 나주이다. ‘천년 목사골’이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이 나주는 선사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전남의 중심으로서 웅숭깊은 역사와 문화가 응축돼 있는 곳이다.

따라서 ‘전라도 정도 1천년’ 사업과 연계해서 나주권을 중심으로 테마를 발굴해 시너지를 높이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나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가 30개에 달하는데 종가문화 활성화 사업을 성씨 박람회와 연계하면 보다 파급력이 커질 것이다.

그리고 강진 전라병영성 등 최근 복원된 유적들을 어떻게 남도문예 르네상스와 유기적으로 결합시킬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전남은 볼거리와 놀거리가 널려 있다. 이를 차별화하고 매력도를 높이는 마케팅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어쩌면 더욱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사람의 입맛을 자극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분위기나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핵심가치는 ‘남도문예 르네상스’가 주민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느냐가 관건이다. 종가집 묵은 장맛이 ‘게미’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듯 남도문예 르네상스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향기를 뿜어내는 프로젝트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