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트 빅토리아'에 올라
입력날짜 : 2005. 06.14. 00:00
박준수 경제부장
'마운트 빅토리아'는 뉴질랜드 행정수도 웰링턴을 감싸고 있는 해발 196m의 야트막한 산이다. 이곳 산정에 오르면 인구 35만명이 사는 웰링턴 시가지가 애머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처럼 한눈에 펼쳐진다. 해변 오리엔탈 베이에 정박해 있는 요트와 산기슭 테라스에 둥지를 튼 고급저택들, 그리고 초생달 모양의 한쪽 날개에 솟아오른 빌딩숲이 조화를 이룬 풍경은 방문객에게 잊지못할 인상을 선사한다.
그 풍광에 녹아든 방문객들은 누구나 환희에 찬 감동속에서 서로 한덩어리가 되고 만다.
애들마냥 신이나서 캠코더로 서로의 모습을 담느라 야단이던 미얀마 스님일행중 한 사람이 말을 건네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한국에 대해 잘안다며 반가워 한다. 황토빛 가사차림에 샌달을 신은 선한 모습이 주변 풍광과 오버랩되며 잠시나마 구도자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때마침 더글라스 오스토(Douglas Osto)라는 30대 중반의 미국인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는 불교철학을 전공한 박사출신으로 뉴질랜드 어느 대학에 교수임용 면접차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고 말했다. 우연치고는 절묘하다. 이런게 '인연'인가 싶었다. 왜 불교철학을 공부하게 됐냐고 묻자 명상(禪)의 세계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뉴질랜드에 발을 딛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곳에 이민와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청정한 자연환경과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뉴질랜드에 5일간 체류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력한 체험을 했다.
시내 일식집을 찾기 위해 대학생인듯한 청년에게 길을 묻자 행선지가 다른 데도 20분가량을 직접 동행해서 안내해준다. 처음엔 운이 좋아 친절한 사람을 만났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이후 여러차례 똑같은 경험을 하고는 이곳의 보편적인 인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또 웰링턴에서 오클랜드로 가는 연결편 비행기 일정을 바꿀 때에도 항공사 직원은 필자의 손을 이끌고 체크인(check in) 데스크 직원에게 안내해주는 세심한 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이같은 여유와 배려하는 문화에 대해 한국교포 정성호씨는 뉴질랜드 사회에는 '경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웰링턴의 대표적인 종합대학인 빅토리아대학은 또 다른 의미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국회의사당 인근에 위치한 호텔 바로 건너에는 빅토리아대학의 법대와 상경대학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새벽 1~2시까지도 불이 꺼지지 않은 연구실이 많았다. 그 대학의 스티븐 엡스틴(Stephen Epstein)교수에게 정말 밤늦게까지 연구를 하느냐고 묻자 대다수의 교수들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구실에 남아 일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뉴질랜드 정부는 대학에 대해 철저하게 연구실적에 따라 재정지원을 하기 때문에 연구하지 않는 교수는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다.
뿐만아니라 빅토리아대학은 올해 교육대학과 통합을 성사시켰는데 교육대는 연구실적이 낮아 내부에서 적잖은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대학은 완전통합에 이르기까지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절충점을 찾아 쟁점을 풀어내 마침내 입법화하는데 성공했다.
전체인구가 400만명에 불과한 뉴질랜드가 선진국의 반열에 우뚝 설 수 있는 것은 겉으로는 '경쟁'이 없으면서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혁신운동을 펼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마치 백조가 호수에서 우아하게 노니는 가운데서도 물속에서는 부단히 자신의 물갈퀴를 움직여야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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