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봄의 길목에서

봄의 길목에서

 

바야흐로 봄의 길목에 들어섰다. 춘분(21일)까지는 아직 10여일이 남아 있고, 한 두차례 꽃샘추위가 예고돼 있긴 하지만 대지 가득 봄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지난 겨울 유례없는 폭설과 한파로 지상의 생명들이 된서리를 맞았지만, 어느새 따스한 봄기운에 움추렸던 어깨를 펴고 푸른 생명의 함성을 내뿜고 있다.
봄의 전령들도 남쪽으로부터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광주·전남 봄꽃은 예년에 비해 1-3일 정도 빨리 개화할 것이라고 한다. 봄꽃의 개화 시기는 2-3월 기온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데, 올해 2월 하순에는 기온이 높고 강수량도 많아 개화가 다소 앞당겨질 것이라는 기상청의 설명이다. 봄을 알리는 꽃의 대명사인 개나리는 오는 21일 여수를 시작으로 24일 광주 지방까지 확산될 예정이다. 개나리보다 2-3일 늦게 피는 진달래의 경우 여수는 19일, 광주는 26일께 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회색빛 겨울이 떠난 자리에 봄꽃이 화사한 자태를 드러낼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꽃은 자연이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미학이자 서정시이다. 그래서 문학작품에, 특히 시에서 꽃은 매력적인 모티브가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시인의 ‘꽃’전문)


그러나 꽃은 슬픔의 이미지로도 다가온다. 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꽃은 쉬이 지고, 화려한 만큼 지고나면 허전함이 크게 자리한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도종환시인의 ‘접시꽃 당신’ 중에서)

그리고 관조하는 인생이 발견한 진리로 표상되기도 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시인의 ‘그 꽃’ 전문)

꽃은 이처럼 다양하게 변용되고 해석되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하지만, 올해는 AI와 구제역 발생으로 봄꽃 축제가 줄줄이 취소돼 지방자치단체와 관광업계가 울상이다. 개화기인 3, 4월에 예정된 전남지역 축제는 광양국제매화축제와 영암왕인문화축제 등 모두 10여개다. 이중 광양매화축제와 왕인문화축제는 일찌감치 취소됐다. 34년 전통의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도 오는 19일부터 3일간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가축 전염병을 우려해 공식 프로그램을 전면 취소했다. 해남 땅끝매화축제(4월1-4일)와 완도 청산도 슬로우걷기축제(4월8일-23일), 유달산 꽃축제(4월9일-10일), 신안 튤립축제(4월15일-24일)도 사태 추이를 지켜본 후 최종 개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봄꽃은 자연이 가져다주는 선물이지만 그것을 즐기는데도 이제는 자연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시대이다. 어서 구제역이라는 역병이 물러가기를 빌어본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진년 새 아침 무등에 오르다  (0) 2012.01.01
계룡산에 오르다  (0) 2011.11.06
산은 내면의 풍경도 아름답다  (0) 2011.03.27
마운트 빅토리아에 올라  (0) 2010.05.19
어머니의 사진   (0) 2010.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