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산은 내면의 풍경도 아름답다

 

 

지난 토요일(3월25일)에 아내, 아들과 함께 집근처 금당산에 올랐다.
지난 겨울에는 눈 때문에 계곡 대신 비스듬한 경사로를 따라 올랐으나 이번에는 직선코스를 택했다. 이 코스는 거리가 짧기 때문에 정상에 빨리 도달할 수 있으나 그만큼 경사가 심해 숨이 차오른다.
그래도 계곡을 따라 오르기 때문에 산등성이와는 색다른 풍취를 즐길 수 있다.
물과 바위가 빚어내는 그들만의 소묘는 초봄의 실루엣과 어우러져 잠시나마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겨우내 햇빛량이 적은 탓인지 실개울 주변에 이끼가 예쁘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적당한 물과 나무그늘, 그리고 바위 등으로 은폐된 공간이 이끼가 서식하기에 안성마춤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이끼를 보자 “집에 가져가 화분에 꾸며놓으면 좋겠다”고 살림꾼다운 한마디를 던진다.
그러나 나는 자연상태 그대로 두고 보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다.
이끼는 푸르스름한 색깔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양탄자처럼 푹신한 질감이 더해져 편안한 느낌을 준다.
계곡의 이끼군락은 모래톱과 바윗돌, 나무와 어울려 마치 한폭의 동양화나 또는 잘 손질된 일본식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나도 모르게 그 앙증맞은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물과 흙이 빚어놓은 한편의 소묘를 바라보며 나는 산의 내면세계를 발견한 것 같아 경이로웠다.
유례없이 추웠던 지난 겨울, 혹한의 시간속에서도 산은 자신의 아름다운 내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백일기도라도 하듯이 사람이 스쳐간 자국을 지워내고 물의 텃치로 모래와 흙을 재료로 예쁜 이끼그림을 완성해낸 것이다.
이 작은 소묘를 본 사람은 누구나 ‘아,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하고 감탄사를 내지를 게 분명하다.
산은 겉으로는 장엄하고 때로는 위압적이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바윗돌 하나에도 내면의 아름다운 품성이 깃들어 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내가 “솔바람소리가 너무 좋다.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우니 자연이 점점 좋아진다”고 말하자 아내가 이상한 뜻으로 느껴졌는지 “가족들은 어떻게 하고 자연으로 갈 생각부터 하냐”고 핀잔이다.
어떻든 나이가 들어가니 유소년기에 체험했던 감성들에게 더욱 이끌린다. 그러나 아내의 말처럼 자연과 가까워지더라도 좀더 있다가 자연에 귀의할 생각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진년 새 아침 무등에 오르다  (0) 2012.01.01
계룡산에 오르다  (0) 2011.11.06
봄의 길목에서  (0) 2011.03.09
마운트 빅토리아에 올라  (0) 2010.05.19
어머니의 사진   (0) 2010.02.26